[논문]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유대인의 미래적 회복에 관한 죽산 박형룡의 입장 고찰과 신학적인 평가 2

이상웅(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김순정 | 기사입력 2018/12/26 [13:07]

[논문]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유대인의 미래적 회복에 관한 죽산 박형룡의 입장 고찰과 신학적인 평가 2

이상웅(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김순정 | 입력 : 2018/12/26 [13:07]
【(리폼드뉴스)이 논문은 이상웅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글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민족적 회심에 대한 죽산 박형룡 박사와 그의 제자들의 입장을 연구하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회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제시하고 있다.

2.3. 죽산의 제자들의 입장.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회복과 민족적 회심에 대한 죽산의 견해를 살펴보았는데, 그의 제자들의 입장이 어떠한지를 확인해 보려고 한다. 먼저 죽산의 제자이자 동료교수였던 정암 박윤선(1905-1988)의 입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정암은 『성경주석 로마서』에서는 “이스라엘 민족 중 구원 얻는 자들의 총수”가 구원 받을 것이라고 해석했고, 유고로 출간된 『개혁주의 교리학』의 종말론 부분에서는 “주님의 재림 직전에 유대인들이 대거 회개할 시기가 한 번 있다”는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로마서 주석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선택된 자들로서 구원 얻게 되는 총수로 이해한 반면에, 강의안 작성 시기를 알 수 없는 종말론에서는 죽산과 동일한 입장을 견지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다.

한편 죽산이 은퇴 후 총신에서 종말론을 오래 가르친 그의 아들 박아론은『기독교 종말론』에서 죽산과 동일한 입장을 개진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회심”을 시대의 징조로 제시하면서, “이스라엘의 택자 회심설”과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심설”로 양분해서 논의했다. 전자는 벌코프와 같은 무천년설자들과 후천년설자들 다수가 취하는 입장이라고 소개하고, 후자는 세대주의를 포함한 전천년설자들이 취하는 입장이라고 소개한다.

로마서 11장 26절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박아론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 후에는 이스라엘의 전체가 회개할 것을 암시한다” 라고 밝힌다. 그가 볼 때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옛적 선민인 이스라엘이 현재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주된 대상이요, 이방인의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있어서 차순위요 제2차적인 목적임을 분명”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이처럼 박아론의 입장은 죽산의 후기 입장과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박아론처럼 기독교윤리학자인 이상원 역시 죽산과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특이한 점은 벌코프나 바빙크의 입장과 죽산의 입장이 “상호모순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양자를 중재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박형룡이나 벌코프나 역사상에 등장한 모든 혈통상의 이스라엘인들이 모두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벌코프는 최종적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인들의 총수가 이스라엘 전수일 수 없다는 결과적 상태를 강조하고, 박형룡은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 중에 한 때 이스라엘인들 전체가 다 구원받은 시점이 있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결과적 상태가 이스라엘인들 전부의 구원이 아니라는 말은 결과에 이르는 과정중에 이스라엘인들 전부가 구원받는 한 시기가 있으리라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박아론이나 이상원은 죽산의 후기 입장을 요약하거나 해명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볼 수가 있다. 오랫동안 총신에서 종말론을 가르쳤던 김길성의 입장 역시도 죽산의 후기 입장과 다르지가 않다. 다만 김길성은 단순히 죽산의 입장을 소개할 뿐 아니라 존 머리, 안토니 후크마, 로이버트 레이먼드, 게할더스 보스 등의 저술들을 참고하여 논의하면서 죽산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다.

비록 신학자가 아니라 목회자로 활동했지만, 죽산 박형룡의 후기 제자들 중 하나인 옥한흠(1938-2010)은 자신의 로마서강해 속에서 이스라엘의 구원 혹은 회복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바가 있다. 옥한흠은 로마서 11장 26절의 “온 이스라엘”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을 소개하고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특별한 위치 때문에 마지막 때에 특별한 방법으로 구원 받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말하면서 유보적 입장을 취한다. 또한 설교를 마치면서도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도 우리는 지켜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일을 열어 주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권면함으로써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에 대한 견해에 대해 마음이 기울어 있음을 내비친다. 또한 총신의 신약교수인 이한수는 동일 구절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소개한 후에 “바울은 구원사의 마지막 단계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집단적으로 구원을 얻게 될 미래 시점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이상과 같은 간단한 개관을 통해서 우리는 죽산 박형룡의 이스라엘의 종말론적이고 민족적인 회심에 대한 견해가 그의 제자들이나 총신교수들에 의해서 폭넓게 계승되어져 왔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들도 있으니 죽산을 이어 총신에서 8년간 교수한 신복윤과 서철원등은 바빙크, 벌코프, 후크마 등이 견지하고 있는 “유대인 가운데 택자 총수”라는 입장을 따랐다.

3. 이스라엘의 회복과 회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의 빛에서 본 죽산의 입장

우리는 앞서 죽산 박형룡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민족적 회심에 대한 견해가 어떠하였으며, 그의 견해가 그의 제자들이나 총신교수들에게 어떻게 계승되어졌는지를 논구해 보았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죽산의 견해는 역사적 전천년설과 더불어 총신의 주류적인 견해임이 확인되어졌다. 이제 우리가 논구해 보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죽산의 견해를 해당 주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 가운데서 어떻게 평가되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생각하거나 평가하게 되면 죽산의 입장은 마치 세대주의 전천년설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 입장을 결정한 것처럼 비판되어질 수가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회복 혹은 회심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간단하게나마 개관하고 죽산의 입장을 역사적으로 평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논의를 편리하게 전개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회복 내지 회심과 관련된 신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로마서 11장 26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에 등장하는 “온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무엇이냐에 대한 견해 차이로 정리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사료된다. 신약학자 C. E. B. 크랜필드(C. E. B. Cranfield, 1915-2015)의 경우는 네 가지의 견해 차이를 소개하는데, 그가 말하는 네 가지 입장은 “(1)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선택된 사람들로 보는 입장, (2) 이스라엘 국가 가운데 모든 선택된 사람들로 보는 입장, (3) 이스라엘 국가에 속한 모든 사람들로 보는 입장, (4) 이스라엘 국가 전체이나 필연적으로 모든 개인들을 포함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입장 등”이다. 그러나 논자가 생각하기에는 캘빈신학교 교수였던 안토니 후크마(Anthony A. Hoekema, 1913-1988)의 세 가지 분류 방식이 더욱 더 편리하다고 생각된다.

후크마가 정리해 주는 바에 따르면 견해 차이는 “(1)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 나라로 모여든 후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회심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 (2) 모든 선택받은 자들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자들, (3) 유대인들 중 선택받은 자들의 전체 숫자가 인류전 역사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주장 등”으로 나뉘인다.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을 간략하게 개관해 보려고 한다. 지면 제한 상 자세한 논의를 제시하려는 의도는 없고, 다만 세 가지의 주요 해석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죽산의 입장은 그 가운데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해석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제한하려고 한다.

3.1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선택된 모든 이들의 구원을 믿는 입장

첫째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선택된 자 모두를 의미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한 초기 교부는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의 편지 149에서 다음과 같이 이 구절에 대해서 말한다.

모든 유대인들이 맹목적이지는 않았다.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인정했다. 그러나 유대인의 충만함이 계획에 따라 부름받은 자들 가운데 들어올 것이고, 거기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로부터 선택된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도 일어날 것이다.

피츠마이어는 이렇게 로마서 11장 26절의 “온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5세기-12세기 주석가들의 대다수가 취한 입장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종교개혁자 존 칼빈 역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이해하였다. 칼빈은 해당 본문 주석 가운데서 “유대 민족이 그 민족이 이전의 종교 생활로 회복될 것을 전망”하려는 해석을 거부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회인 영적 이스라엘”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에 대해 거칠게 글을 썼던 후기 루터와 달리 칼빈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그들 가운데 여전히 머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크마의 비판처럼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이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11회 사용하는 중에 단 한 번도 영적으로 이해한 적이 없는데, 11장 26절만 영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현대의 학자들 가운데 이 입장을 취하는 이는 많지가 못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학자는 두 사람이다. 구약학자 팔머 로벗슨은 1979년에 발표한 한 논문에서는 “온 이스라엘”을 선택된 유대인들로 이해했다가, 2000년에 간행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저술에서는 칼빈처럼 영적인 이해를 주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바울에 대한 신선한 관점”(Fresh Perspective on Paul)을 주창하고 있는 톰 라이트(Tom N. Wright)의 입장 변화이다. 2002년에 간행된 『로마서 주석』에서 톰은 로마서 연구 초기에는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선택된 사람”으로 이해했었으나, 계속되는 로마서 연구를 통해 “주해상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의견을 따라서 나중에 마지못해 마음을 바꾸”어서 “신약학자들은 차치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소수 의견”에 속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의 변화된 입장이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을 즉,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를 포함하는 아브라함의 가족 전체를 구원하실 것이며, 이 일은 현재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일어날 것이며, 그 일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됨으로써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해설을 전적으로 배격할 수는 없으나, 문제는 앞서 지적한대로 로마서 9-11장 문맥에서 이 해설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이다.

3.2. 유대인들 가운데 택자 총수의 구원으로 보는 입장.

두 번째 견해는 역사 전체를 통해 이방인들의 충만함처럼 유대인들 중 택자들의 총수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온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11장 26절의 “온 이스라엘”이란 종말의 유대인들의 국가적 회복으로 보지 아니하고, 역사 가운데 선택된 모든 유대인들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설을 취하는 이들은 대체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와 신칼빈주의자들이라고 하는 특징을 가진다.

카이퍼가 자유대학교 신학부에서 행한 종말론 강의를 학생들이 녹취한 자료를 보면, 카이퍼의 입장은 그의 사상의 특징인 유기체론(een organisme)의 관점에서 이방인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접근하는 것을 드러내 준다. 그의 입장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선택된 자들의 총수의 구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이퍼의 강의안은 저자의 감수를 거치지 않은 자료이기 때문에 그리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이 입장을 강력하게 대변한 대표적인 학자는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였다. 바빙크는 기본적으로 신약의 “신자들의 공동체가 모든 면에서 국가적, 육체적 이스라엘을 대치했”으며,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 안에서 성취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로마서 11장 26절의 “온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마지막 날에 회심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 전체”로 이해하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반대하면서 “수 세기에 걸쳐 이스라엘로부터 인도함을 받게 될 충만한 수”를 가리킨다고 해설한다.

이러한 바빙크의 견해는 화란 개혁주의 진영에 속한 여러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루이스 벌코프, 윌리엄 헨드릭슨, G. C. 베르까우어, 헤르만 리덜보스, 안토니 A. 후크마, 얀 판 헨드른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들 모두는 화란개혁주의 신학자들이든지, 아니면 화란 후예들로서 미국 칼빈신학교와 연관된 이들이다. 예외적으로 밥 존스대학 출신의 PCA신학자인 로버트 레이먼드(Robert Reymond)와 미국 루터파 주석가인 리처드 렌스키(Richard C. H.Lenski, 1864-1936) 등도 이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3.3. 이방인의 충만함이 들어온 후에 유대인의 충만함이 들어올 것이라는 입장.

세 번째 입장은 “온 이스라엘”을 민족적 유대인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초기 죽산의 경우는 이스라엘의 고토 회복과 유대인의 종말론적이고 국가적인 회심을 주장했고, 후기 죽산의 경우에는 유대인의 전국적 회심을 주장했기 때문에 이 세 번째 입장에 속한다는 점을 앞서 확인한 바가 있다. 따라서 이 세번째 입장에 속한 이들을 잘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사료된다.

우선 이 입장을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자들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고전적인 세대주의자들 뿐 아니라, 찰스 라이리, 존 월부드 같은 수정된 세대주의자들과 그들이 중심이 되어 개정한 『새로운 스코필드 성경』(1967년)의 해당 구절 각주에는 이스라엘의 고토 회복과 회심에 대한 예언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사임을 분명하게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현재도 활동 중인 세대주의 설교자인 존 맥아더에게서도 발견되어진다. 그러나 세대주의의 주류적인 입장은 교회와 이스라엘을 구분하는 것이고, 종말의 시기에 유대인들을 위한 특별한 섭리가 남아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대주의적 근거위에서 백투예루살렘 운동과 같은 극단적인 입장이 주창될 수 있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스라엘의 회복 혹은 회심에 대한 해석의 역사를 개관해 보면 죽산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 단순히 세대주의자들이나 기독교 시온주의자들(Christian Zionists)의 입장일 뿐 아니라 수많은 개혁주의자들이나 복음주의자들도 취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을 견지했던 다양한 학자들의 면면을 개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단 우리는 이스라엘의 고토 복귀와 독립에 대한 관심과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회심에 대한 관심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주장하지 않아도, 후자에 대해서 주장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해석의 전통을 개관하기 위하여 이안 머리(Ian Murray)의 『청교도의 소망』(A Puritan Hope)라는 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유대인의 종말론적 회심을 정당한 해석이자 소망이라고 생각했던 다양한 이들을 소개해 준다. 종교개혁 시기에는 마르틴 부처, 테오도르 베자, 피터 마터 버미글리를 들 수가 있고, 1560년에 간행된 『제네바 성경』에서는 바울이 “전체 유대 민족이, 비록 모든 개인 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리스도 교회에 연결될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라고 주해를 달고 있다.

이안 머리는 또한 이러한 해석이 청교도 전통에 영향을 미쳐서 수많은 청교도들이 동일한 입장을 견지했음을 서술해준다. 신약을 유대인을 위해 히브리어로 번역할 것을 제안한 최초의 영국인 휴 브러턴(Hugh Broughton, 1549-1612)이 있고, 또한 케임브리지 청교도주의의 원조라 할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가 있는데 그에 의하면 종말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과 정하신 방법에 따라 “유대 민족은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고 이 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공표했고, 그의 영향을 받은 리처드 십스, 토마스 굿윈 등을 통해 이런 입장은 계승되어 졌다. 상황이 그러하였기에 “17세기의 첫 사반세기부터 유대인의 장래 회심은 영국 청교도 사이의 공통의 믿음이 되었”고 “유대인의 미래에 관한 동일한 믿음은 17세기 청교도 문헌에서 폭 넓게 발견”되어진다고 논평을 할 정도로 이 입장은 17세기 영국에서 보편화된 입장이 되었다.

윌리엄 브릿지, 조지 길레스피, 로버트 베일리, 존 오웬, 토마스 맨턴, 존 플라벨, 데이비드 딕슨, 조지 허치슨, 제러마이어 버러스, 윌리엄 그린힐, 엘나단파, 제임스 더럼, 윌리엄 구지, 잉크리즈 매더 등 머리가 소개하는 청교도들의 명단은 이런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렇게 주도적인 청교도들이 취하는 입장이 동일하다 보니 1640년대에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91문답(주기도문의 두 번째 간구 해설)에서도 동일한 해석이 반영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죽산은 장로교 신학자로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중시하며 신학작업 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또한 대체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따랐던 독립파들의 신앙고백서인 「사보이선언」(1658년)에서도 유대인의 종말론적인 회복에 대해 고백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표준문서를 따라 신학했고, 청교도 전통에 속했던 조나단 에드워즈 역시 1739년에 노샘프턴 교회에서 연속 강해한 『구속 사역의 역사』에서 교회의 영광의 시대에 있어서 유대인의 불신앙이 타파되며,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이 일어날 것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의 『여백성경』의 로마서 11장 26절 해설에서도 온 이스라엘이란 “유대인들의 충만함은 기독교를 고백하는 유대 나라 전체다.”라고 말한다.

죽산 박형룡이 평생 존경하고 의존하였던 찰스 핫지(Charles Hodge) 역시도 이스라엘의 고토 회복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도 유대인의 종말론적인 회심 가능성에 대해서 인정했다. 죽산의 프린스턴 유학 시절 스승이었던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는 화란신학 전통에 속해 있으면서도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을 초기부터 가르쳤다. 그의 생애 만년에 나온 『바울의 종말론』에서도 그런 입장을 분명히 밝혔지만, 그가 스트라스부르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5년간 모교 캘빈신학교에서 교의학을 가르치면서도 그러한 해석을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죽산과 프린스턴에서 동문수학한 존 머리(John Murray)의 경우도 『로마서주석』에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것은 “하나의 민족으로 이스라엘의 충만함, 받아들임, 접붙임의 견지에서 해석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현재도 왕성하고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 가운데도 여러 신학자들이 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안토니 후크마의 제자로서 중미개혁신학교 교수인 코르넬리스 비네마(Cornelis P. Venema)는 『개혁주의 종말론 탐구』 속에서 자기의 스승의 어깨위에 서 있음을 도처에서 보여주면서도 “온 이스라엘”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스승과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는 세 가지 해석을 소개한 후에 로마서 11장 본문 주해에 근거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미래에 회심할 것이라는 사실이 이 본문의 주요 논점으로서 가장 타당하다”고 의견을 밝힌다.

비네마처럼 무천년설을 취하는 킴 리델바거(Kim Riddlebarger) 역시 “온 이스라엘”을 “이스라엘의 대다수나 많은 수”를 의미하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하나님은 민족 이스라엘의 대다수가 그리스도를 믿도로 역사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캘빈신학교의 데이빗 홀베르다(David Holwerda) 역시 자신이 속한 신칼빈주의 전통과 달리 이 입장을 대변했다. 그의 영향을 입은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도 “말세에는 유대인들이 광범위하게 접붙임을 받는 일” 혹은 “민족적 유대인의 대량 유입을 통해” 교회가 확대될 것을 주장한다. 또한 화란개혁주의 전통에 서서 신학하고 있는 판 데어 꼬이와 판 덴 브링크 역시 “유대인의 미래적이고 집단적인 회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나아가서는 18세기 나더러 레포르마치(Nadere Reformatie, Second Dutch Reformation) 시기의 화란 신학자들이 동일한 입장을 취하였으며 “당시 유대인들을 위한 희망의 근거”로 삼았다고 논평을 해준다.

이제 신약학자들의 주석들을 고려해 본다면 이 세 번째 입장을 취하는 주석가들이 의외로 많음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죽산이 역사적 전천년설을 확립하고 보강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조지 엘든 래드(George Eldon Ladd, 1911-1982), 판 안덜(J. van Andel), 헤르만 바빙크의 제자로서 신약학을 가르친 세이끌르 흐레이다누스(Seakle Greijdanus), 샌디와 헤들럼(Sanday and Headlam), 스위스 바젤의 신약신학자였던 오스카 쿨만(Oskar Cullmann), 크랜필드(C. E. B. Cranfield), 더글러스 무(Douglas Moo), 유딧 건드리 볼프(Judith Gundry-Volf), 토마스 슈라이너(Thoms Schreiner), 박익수 등을 세 번째 입장의 지지자들로 제시할 수가 있다. 심지어는 가장 최근에 출간된 리처드 롱게네커(Richard N. Longenecker)의 주석에서도 동일한 입장을 표방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두 사람의 설교자의 견해로서 마틴 로이드존스와 존 파이퍼의 견해이다. 마틴 로이드존스(D. Martyn Llyod-Jones)는 1952-1955년어간 웨스트민스트 채플 금요집회에서 연속해서 강론했던 “성경의 위대한 교리들”(Great Doctrines of the Bible)을 통해서는 로마서 11장 26절의 의미가 “모든 시대와 세대들 중의 모든 믿은 유대인들의 전부”가 확실하게 구원받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했으나, 10년 후인 1965년 금요집회에서 연속 강해한 로마서 11장 강해를 통해서는 앞서 견지했던 자신의 입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종말에 있을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회복이 있을 것이 확실하다고 강해했다. 한편 미국 칼빈주의 침례교 목사이자 다작가로서 영어권에서 많은 영향을 미쳐 온 존 파이퍼(John Piper)는 로마서 11장 22-29절에 대한 강해 속에서 로마서 11장 26절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믿는지 다섯 가지 이유들을 제시했다.

4. 나가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회복 내지 민족적 회심에 대한 죽산 박형룡의 견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의 견해가 후학들에게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확인해 보고, 나아가서는 죽산의 견해가 해당 주제에 관련한 해석의 전통들 가운데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천착해 보았다. 앞선 논의의 결과들을 간단하게 먼저 요약해 보겠다.

2절에서 우리는 죽산 박형룡의 조기 입장과 후기 입장을 대별해서 살펴보았다. 초기 죽산은 한국내한 영미권 출신의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종말론을 형성하게 되었고, 1929년에 쓴 논문을 통해 죽산은 종말론적이고 민족적인 유대인의 회심뿐 아니라 유대인의 고토 복귀와 나라 설립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교의신학 내세론』(1973년)에 개진된 후기 죽산의 입장은 이스라엘의 고토 회복이나 나라 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은 여전히 시대의 표지로 주창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우리는 이러한 죽산의 기본적이고 확고한 입장이 그의 후학들(박아론, 김길성, 이상원, 옥한흠, 이한수)을 통해서 계승되었음을 확인했고, 더러는 화란신학 전통의 영향 하에 무천년설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3절에서는 죽산이 분명하게 개진했고 한평생 견지했던 입장을 동 주제에 관련하여 제기된 주요 세 가지 입장의 빛에서 확인하는 일을 해 보았다. 우리는 로마서 11장 26절에 나타나는 “온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둘러싼 세 가지 입장(즉, 영적 해석, 유대인 가운데 택자 총수, 종말론적인 국가적 회심)을 취하는 학자들을 개관해 보면서, 각각의 입장이 해석의 역사 가운데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피상적으로 관찰하자면 죽산의 입장이 세대주의나 기독교 시온주의의 영향으로 오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확인 작업은 적실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세 가지 입장을 취하는 이들을 개관한 결과 얻게 된 중요한 결론은 그리스도 재림 전에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심(죽산의 말대로 전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이 일어날 것이라는 죽산의 확고한 입장이 단지 세대주의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 주요 청교도들, 수 많은 조직신학자들과 신약학자들이 취하여 온 입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말세에 유대인들의 집단적 회심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위하여 기도하며, 선교에 힘을 쓰는 것은 결코 비성경적이거나 비개혁주의적이라고 일도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물론 우리는 세대주의가 강변해 온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별, 세대론 등 극단적인 입장을 잘 경계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백투예루살렘 운동과 같은 극단적인 입장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잘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 가지 첨언을 한다면, 이상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종말론적인 회복 내지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화란신학 전통의 입장도 결코 비성경적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죽산의 입장이나 화란신학 전통 양자는 다 성경적이기를 추구하는 개혁신학자들이 취하는 입장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후자의 전통에서 유대인에 대한 선교나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치 않는 것도 결코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본질적인 점에 대해서는 통일성을, 비본질적인 점에 대해서는 관용과 양해의 마음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종말론에 있어서도 본질적으로 일치를 추구해야 할 것과 해석상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점들에 대한 구별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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