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윤 목사 연재3]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갈등 치유

자유주의에 대항, 기독교의 마지노선을 설정한 운동이 근본주의

리폼드뉴스 | 기사입력 2018/12/22 [14:59]

[김상윤 목사 연재3]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갈등 치유

자유주의에 대항, 기독교의 마지노선을 설정한 운동이 근본주의

리폼드뉴스 | 입력 : 2018/12/22 [14:59]

▲ 김상윤 목사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무오성,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적, 부활을 부인하여 기독교의 정통 교리인 근본을 부정하였다.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오순절 등의 각 교파는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기독교의 마지노선을 설정한 운동이 근본주의이다. 근본주의는 개혁주의나 복음주의와 별개의 신학운동이 아니다.


이슬람, 불교, 유대교, 힌두교 등의 파괴적이고도 광신적인 원리주의 혹은 근본주의 때문에 우리 근본진리를 추구하는 개혁주의가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원래 근본주의는 19세기 미국 등 서구에서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교회의 정통신앙을 지키려는 신앙운동으로부터 출발한다.

 

어느 교파 어느 신학사상이든지 성경의 무오성,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적, 부활 등의 기독교의 근본을 양보할 수 없다는 마지노선을 고수하는 자들이 바로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지키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이러한 근본진리를 추구하는 운동을 근본주의라고 하여 근본주의를 배격한다.


개혁주의란 역사적으로 칼빈이 발전시킨 교리, 정치 및 행정을 따르는 교단 혹은 교회를 의미한다. 개혁주의 내에서 복음주의를 위험한 신학운동으로 생각한 반면 복음주의에서는 개혁주의를 편협한 신학운동, 혹은 분리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자유주의 자들은 보수주의를 극단적 근본주의자들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개혁주의, 근본주의, 복음주의는 전호진 박사의 주장대로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름, 다른 특색을 가지고 발전하였고, 동시에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 셋은 본질적으로 다른 뿌리가 아니라 한 원안에 있다.

박형룡 박사는 “장로교회의 신학이란 구미대륙의 칼빈 개혁주의에 영미의 청교도 사상을 가미하여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영미 장로교회의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이 한국에 전해지고 성장한 과정이다”라고 하여 ‘청교도 개혁주의라고 했다(‘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인 전통’의 글에서).

박형룡 박사는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를 동일하게 보고 있는가 하면 복음주의와 전통주의를 교대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자신은 복음의신학라고 밝힌 총신대 박용규 교수는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칼빈주의 정통신학’, ‘복음주의 보수신학’,이라 했다. 그리고 전통적 보수주의 정통주의와 동일한 의미로 ‘근본주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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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복음주의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진리 혹은 기본적 교리를 그대로 믿고 전하는 신앙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복음주의는 전도와 선교에 강하다. 복음주의는 부흥과 선교에 더 열심이지만 너무 넓은 복음주의로 성경적 메시지를 희생할 위험이 있는 반면, 칼빈의 전통하에 있는 개혁주의는 선교와 전도, 성령론에 약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총신대 박용규 교수는 한국장교회의 분열을 경험한 해방 10년사, 즉 50년대 60년대는 근본주의 시대로 평가한 반면, 부흥의 시대인 80년대를 복음주의로 평가한다. 그러나 근본주의, 복음주의, 개혁주의 등은 다양하게 구분되어진다. 전호진 박사의 주장대로 복음주의 안에는 너무 넓은 알미니안주의적 복음주의가 있는 반면 개혁주의에도 자유주의가 있다. 따라서 어떠한 개혁주의, 복음주의냐가 중요하다.

필자가 소속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는 총신대학교의 신학적 노선과 같이 간다. 그러나 신학교 교수들의 신학적 성향은 교단의 신학적 노선과 같이 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 앞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총신대학교에서는 법인 이사들 중심의 개혁주의와 일부 교수들 중심의 복음주의와의 대결 양상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양상은 일부 대형교회 담임목사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무시할 수 없다.


보편적으로 개혁주의가 복음주의보다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 배경이다. 대형교회는 주로 복음주의이지 개혁주의가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물론 교회 규모에 따라 신학의 정체성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 영향력 행사에 있어서는 복음주의 계통의 교회가 대형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재건파에서 성장했으며, 집안의 3대째가 재건파의 신학과 신앙에 훈련되어 왔다. 그러나 어느 교파의 교회이든지, 개혁주의, 근본주의, 복음주의를 주창하기 전에 교회의 신학과 신앙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담임하는 목사의 신학과 신앙 사상에 따라 전혀 다른 기독교, 혹은 교회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성경의 계시에 기초를 두되 2천년 동안 계시 이해의 점진적 발전에 의해 정착된 정통신학과 교리, 이를 계승한 종교개혁자들의 역사적인 신학과 신앙의 전통하에서 오늘의 발전된 계승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총회와 총신대학교는 개혁주의와 복음주의가 서로를 폄하하고 정죄하여 대결구도로 갈 것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 역사적인 개혁신학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목회현장에서 복음의 역동성에 의한 목회와 전도,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역동적 전도와 목회는 분명한 신학적, 교리적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한다.


제아무리 대형교회를 이루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할지라도 2천년 동안 계승된 역사적인 개혁신학과 신앙이 무너질 때 그 교회와 목회자 역시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또한 목회현장과 피폐한 교회의 모습 속에서 앵무새처럼 개혁주의를 부르짖을 지라도 그 부르짖음은 이 시대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신학적, 교리적 근거 없는 설교나 목회를 배격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접촉점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신학적, 교리적 부분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우리들의 아픔과 문제를 정직하게 노출하여야 한다.


그럴 때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나는 내 자신에게 문제 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우리 목회자들은 말씀 앞에서, 강단에서 무릎을 꿇게 할 것이다. 


김상윤 목사(나눔의교회 담임목사, 칼빈대학교 겸임교수, 미래窓포럼 대표, 교회와경찰중앙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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