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이신칭의 교리 500년(4)

서철원(前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김순정 | 기사입력 2018/08/15 [09:56]

[논문] 이신칭의 교리 500년(4)

서철원(前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김순정 | 입력 : 2018/08/15 [09:56]
이 글은 서철원 박사가 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이신칭의 교리를 강조한 종교개혁으로부터 500주년이 되는 현재까지 교회가 지켜온 전통을 연구하여 제시하고 있다. 오늘 교회는 이신칭의교리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강조하고 있다.

6 하나님의 창조경륜의 견지는 새 관점 논의를 종식함

바울을 후기 유대교 신학의 틀에 매어두어야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경륜의 범위에서 이해해야 하는 문제는 바울의 편지에 나타난 칭의와 관련된 성경본문들의 주석만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바른 해답이 나온다. 하나님은 유대교 신학의 틀 안에서 그의 구원경륜을 펴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창조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창조경륜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가지시고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을 인격체로 지으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어 창조주만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정하셨다.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선악과계명으로 언약을 체결하셨다. 선악계명은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하는 계명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면 그것이 선이어서 생명과 영생에 이르고,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면 그것이 악이어서 죽음과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정하신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언약체결 시 하나님은 선악계명을 한 나무에 매셨다.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나님 섬김을 바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약체결 후 첫 인류는 창조주만을 전심으로 섬겼다. 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탐구할 때도 거기서 창조주의 무한한 지혜와 권능을 보고 늘 그를 찬양하고 경배하고 감탄하였다. 그러다가 유혹이 왔다. 자주자가 되어 선악을 스스로 결정하고 살라는 유혹에 넘어져 창조주 하나님 섬김을 거절하는 반역을 일으켰다. 언약이 파기되어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잃게 되었다. 창조경륜이 무너지게 되었다.

반역을 일으켰으므로 언약의 법대로 하나님은 범죄자들에게 죽음과 저주를 선언하셨다. 이제 이후로 죽음이 인격적 존재들의 세계에 철칙으로 세워졌다. 사람은 죽음의 법을 고치거나 해소할 수 없다. 죽음의 법이 세워지고 저주가 임하여 오므로 인류가 많은 고통과 질병과 자연재해들로 죽음을 독촉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대로 가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할 존재들이 다 없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은 반역한 백성을 돌이켜 다시 자기의 백성 삼기로 정하셨다. 그러려면 죄를 용서하고 무효화해야 한다. 사람의 범죄를 무효화하고 용서하려면 죗값을 갚아야 한다. 사람이 범죄하였으므로 사람이 죗값을 갚아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따라 범한 죗값을 사람이 갚아야 그 죄가 용서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은 다 범죄자이고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들이어서 아무도 죗값을 갚을 길이 없게 되었다. 죗값을 갚아 죄를 속량하지 않아서는 모든 인류는 다 반역죄를 지은 범죄자들이므로 멸망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면 하나님은 창조경륜을 이루실 수 없게 된다. 곧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수 없게 된 것이다. 범죄한 인류는 죗값을 갚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대신해서 죗값을 갚으시기로 하셨다. 이 작정을 이루시려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으로서 죗값을 갚으시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 구원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시는 통로를 마련하기로 하셨다. 이 목적으로 아브라함을 불러 한 민족으로 만들기로 정하셨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을 애급에서 400여 년간 양육하시고 시내산으로 인도하여 언약을 체결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백성으로 삼으셨다.

때가 차면 그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시기로 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죗값을 갚으시므로 온 인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이키기로 하셨다. 이 일을 위해 이스라엘은 도구로 선택되고 조성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의 섭리의 목표로 정하시지 않으셨다. 결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점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경륜과 구원사역을 후기 유대교의 신학의 도식대로 풀면 안 된다.

6.1 하나님의 구원경륜

대신 속죄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짐승으로 제사하는 속죄제사 제도를 세우셨다. 그래서 양과 짐승으로 속죄제사를 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대신 속죄하실 것임을 가르치셨다. 속죄제사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대신 속죄를 하실 것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짐승으로 드린 속죄제사는 결코 죄를 속하지 못한다. 그 제사제도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제사의 예표이고 모형이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속죄제사의 법을 따라 대신 죽으시므로 세상 죄과를 속량하여 인류를 구원하셨다. 십자가에서 전가 받은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피 흘리시므로 죗값을 갚으셨다. 그리하여 세상 구원을 다 이루셨다. 하나님의 본래 구원경륜이 온 인류를 구원하여 자기 백성을 삼아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도구로 선택되었다. 하나님의 역사 섭리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높이 들어 세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도구로 택하시고 대신 속죄제사의 법을 가르침 받게 하셨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대신 속죄제사의 법으로 세상을 구원하셨다. 온 인류를 구원하여 창조 시에 가지신 창조경륜을 이루시는 것을 목표하셨다.

6.2 율법수여의 근본 뜻

새 관점 학파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 믿음과 율법준수를 합해야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율법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도 나쁘게 말하지 않았고 바울도 율법을 잘 지켰으므로 율법을 지키실 수 있다는 신념이 강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주셨으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도 믿음에 율법준수를 더해야 완전한 구원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을 맺어 언약백성이 된 이스라엘로 언약의 거룩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으로 통상 이해된다. 그러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사람이 율법을 지켜 구원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니다. 율법이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워도 죄 있는 인간은 결코 지킬 수 없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지켜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심이었다. 율법은 지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범함만 더해진다. 율법을 범해도 망하지 않도록 제사제도를 세워 속죄를 받게 하셨다. 그러나 속죄제사로 사람의 죄가 속량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제사의 예표이고 모형일 뿐이었다.

율법도 마찬가지이다. 율법을 지켜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범함만 더해진다. 결국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율법의 완성자를 보내주시옵소서 라고 절규하게 되었다. 때가 차매 율법의 완성자가 오셔서 율법을 성취하셨다. 그러나 율법의 조목들을 다 지켜 율법준수를 완수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완성자는 율법을 범한 죗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성취하시므로 율법을 성취하셨다. 계명과 율법을 범한 죗값을 그의 피로 갚으시므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셨다. 율법의 성취는 그리스도가 죗값을 지불하므로 완전하게 이루셨다. 그러므로 율법의 조문들을 다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사라졌다. 왜냐하면 죗값을 갚음 받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없어졌다. 이미 빚을 다 받았기 때문에 빚을 갚으라는 요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면에서 율법이 폐지되었다.

율법이 성취된 후에는 율법준수와 믿음을 함께 해야 온전한 구원이 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중세 천 년 동안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완전히 실패임이 증명되어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런데 다시 종교개혁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하다.

지금 로마교회는 전통적인 교리와 신학을 다 버렸으므로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교리는 더 이상 통용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로마교회의 구원은 현세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것 혹은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들의 신학에는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 얻어 갈 내세라든가 영원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는 것은 복음주의 교회들을 멸하여 세계 종교 통합에 이르기 위해서 진행하고 있는 큰 기도의 일부일 뿐이다.

6.3 유대인들과 언약체결은 그들의 세계 지배를 위해?

후기 유대교 신학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어 자기의 백성 삼으셨으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결론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세계를 창조하시고 언약을 체결하셨으면 이스라엘 혹은 유대인들에게 세계 지배가 필연적으로 귀속된다. 이런 가설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자리를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세계 지배를 위해서 역사를 진행하시고 구원 섭리를 진행하시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주 예수를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백성 자리를 박탈당하였다. 더 이상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그들 중에서도 믿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된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그들 가운데 오셔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을 목표하고 일하신다. 창조경륜이 성취되면 하나님이 주 예수를 믿어 그의 백성이 된 사람들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 충만히 거주하신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유대인들을 세계지배자로 세우는 것은 아무런 자리가 없다. 유대인들이 세계 종말에 세계 지배자로 세워져서 온 세계를 통치하는 것은 후기 유대교 신학에만 있는 일이다.

6.4 후기 유대교 신학에서 예수 메시아

톰 라이트는 바울이 후기 유대교 신학을 견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 이방인들을 아브라함의 가족으로 편입시키기 위해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예수 메시아가 구원사역을 하여 이방인들로 아브라함의 가족이 되게 했으므로 그가 온 세상의 참 주가 되셨다고 한다. 톰 라이트는 바울의 모든 활동을 유대교 신학의 구조에 넣어서 설명한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온 세상의 주시라는 것을 널리 선포하고 알리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라고 제시한다.

그래서 톰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지칭하지 않고 언제든지 예수 메시아라고 한다. 바울은 예수 메시아가 온 세계의 참 주가 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널리 선포하였다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예수가 유대인들의 구주이고 주이심을 강조하여 그가 이스라엘의 메시아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톰 라이트의 이해에 의하면 예수가 메시아가 된 것은 유대교 신학 전통에 따라서 이다. 그가 메시아일 수 있는 것은 그가 다윗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메시아 되는 필수요건이다. 어떤 사람이 메시아가 되는 충분조건은 나라를 외국의 압제에서 독립시키는 것이다. 라이트는 예수가 메시아 되는 충분조건을 유대나라의 독립을 이룸에 두지 않고 그의 구원사역을 통해서 이방인들을 아브라함의 가족에 합류시킨 것에 두었다.

유대교 신학에서는 메시아는 위의 두 조건을 충족하면 되지 하나님의 성육신이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톰 라이트는 예수가 메시아 될 수 있는 것은 충분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 아니고 이방인들을 아브라함의 큰 가족에 합세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톰 라이트의 신학에서 예수는 한 인간으로서 구원사역을 이루었다.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한 것이 아니고 다윗의 후손인 하나의 유대인으로서 한 것이다. 예수가 한 인간으로서 구원을 이루었다면 그의 구원은 우리의 구원일 수 없다. 하나님이 구원하셔야 그 구원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 아다나시오스의 주장대로 피조물이 이룩한 구원은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없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다. 바울을 유대교 신학의 구도에 억지로 밀어 넣을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런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으로 성립할 수 없다.

또 율법을 지켜야 완전한 구원에 이른다는 신학도 유대교 신학이지 그리스도교 신학일 수 없다. 바울은 믿음에 율법준수를 더함으로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다.

신약에 의하면 오직 주 예수와 그의 구원사역을 믿음으로만 완전한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그의 피로 죗값을 갚으셨으므로 믿기만 하면 온전한 구원을 얻는다. 이 믿음에 율법준수 곧 행함을 더해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도 이신칭의가 그리스도교의 근본진리이고 교리이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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