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국가 관계

교회와 국가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피차 해야 할 일은 각각 무엇인가

박일민 | 기사입력 2015/03/31 [10:09]

교회와 국가 관계

교회와 국가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피차 해야 할 일은 각각 무엇인가

박일민 | 입력 : 2015/03/31 [10:09]
▲안정은 매우 주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리폼드뉴스

한국의 교회는 국가와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때보다, 서로 긴장 관계에 있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교회가 불필요하게 국가 권력에 야합을 하는 것처럼 보여진 일도 있었다. 그것은 교회나 국가에 모두 불행이었다. 우리는 불행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이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잘못된 주자들과 비교를 살펴보기로 하자.

1.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음에서 동일하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골 1:18).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만 영광을 돌린다. 만일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지 않거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국가도 역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 국가들의 흥망성쇄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국가들의 권세는 다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서 허용되고 운영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했다(롬 13:2). 그러므로 우리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처럼 국가를 사탄의 세력 아래 있는 죄악 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국가도 역시 교회 못지 않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신성한 영역임을 인정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교회는 국가로부터 부당하게 간섭이나 핍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는 위정자들이 국가를 잘못 경영한 결과이었다. 그러므로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은 국가 그 자체가 아니다. 사탄에게 노예가 되어 불의를 행한 악한 위정자들이 비난과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가를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국가가 하나님의 교훈대로 운영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야 한다. 참여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사도 바울께서는 디모데에게 권면하신 대로, 국가와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방법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이 모든 경건과 안정한 중에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신다(딤전 2:2). 세금이나 기타 국민의 의무를 수행하는 방법도 있다(롬 13:7). 관리들을 양심적으로 존경하고, 합법적인 명령에 순종을 하는 방법도 있다. 위정자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선을 이루어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롬 13;5, 벧전 2:17) 종교가 다르거나 불신앙자라 하더라도 행정관리들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그들에게 순종을 해야 한다(벧전 2:13-16). 여기에는 교회의 직분자도 예외일 수 없다(롬 13:1, 왕상 2:35, 행 25;9-11, 유 8-11).

그리고 자신이 직접 행정 관리가 되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왕이나 방백이나 재상이나 존귀한 자, 즉 세상의 재판관이 되는 것을 죄악시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서 고의를 세우고, 세상을 처리하시기 때문이다(잠 8:15, 16).

2. 교회와 국가는 그 관여하는 영역이 서로 다르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그 관여하는 영역은 서로 다르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는 사람의 영적인 영역, 즉 신령한 영역에 관여를 한다. 그러나 국가는 사람의 육체적인 영역 즉 세속적인 영역에 관여를 한다.

신령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은 상하의 관계가 아니다. 그 영역은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같은 차원에서의 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교회와 국가의 영역은 상하 또는 우열의 관계로 보아서는 안 된다. 교회는 신령한 영역에서 하나님께 직접 다스림을 받아야 하고, 국가는 세속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직접 받아야 한다. 교회가 국가의 정책에 대해서 일일이 관여하는 것은 잘못이다. 국가도 교회의 신령한 일에 대하여 관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 영역에서 행사하시는 영역주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영혼과 육체가 모두 중요하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어느 하나라도 없을 수 없다. 이 두 부분이 나뉘어 있으면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교회와 국가에 대해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 관심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3. 교회와 국가의 관계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이 있었다. 그 주장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너무나 큰 피해를 입혔었다. 그러므로 그 잘못된 주장들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잘못된 주장들

첫째, 국가가 교회 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

교회는 한 나라의 영역 안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교회는 국가의 관할 아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교회의 재산권이나 직원의 임면권을 포함한 교회의 모든 것들은 당연히 국가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고 교리의 제정도 역시 국가의 관할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주장을 근거로 국교(國敎) 제도가 생겨났다.

근세 영국의 교회와 유럽 몇 나라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실제로 실행에 옮긴 일이 있었다. 영국교회는 국왕이 교회의 머리라고 하는 "국왕수장령(國王首長令)"을 교리로 채택했다. 이러한 영국교회의 입장은 엘리자벳 여왕시대에 제정된 39개조 신조에 잘 나타나 있다.

"여왕은 영국이나 영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모든 지역에서 최고의 권한을 가지며, 어떻게 모아졌는지 관계없이 이 나라의 모든 재산, 즉 교회의 것과 민간의 것을 막론한 모든 재산에 대해서 최고의 권을 가지므로, 외국의 권한을 받지 아니하며 받아서도 안 된다."(제 37조)

둘째, 교회가 국가 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

교회와 국가는 모두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졌으므로, 마땅히 하나님의 관할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교회에게 천국 열쇠의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교회와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관할권은 교회에 위임이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교회는 국가 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중세의 교회는 이 근거 위에서 교회가 국가의 모든 문제들을 관리했다. 중세에는 왕의 즉위나 왕실의 결혼을 위시한 제반 정치적인 일들이 교회를 대표하는 교황의 허락을 받아서 이루어졌다.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도 교회의 관할 아래 있었다. 과학이나 경제를 비롯한 군사 영역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회의 종교재판은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교회가 국가 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19세기 후반의 로마교회에서도 계속되었다. 1870년에 있었던 제 1차 바티칸 회의에서는 선언하기를, 교회를 대표하는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판단을 가진다고 했다. 그 몇 년 후인 1873년, 교황 피우스는 '교황은 국가나 위정자들의 행위에 관하여 국가적인 일들에 있어서까지 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사람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모든 것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교훈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세속적인 일들이 성경의 가르침보다 제도로서의 교회의 관할 아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교회에 대한 반발만 가득할 뿐이었다.

셋째, 교회와 국가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는 주장

교회가 국가에 의해서 핍박을 받던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국가는 서로  적대관계에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열광적인 신앙에 치우쳐 있던 종교개혁 시대의 일부 사람들도 이런 주장을 했다. 그들은 교회는 신령하고 거룩하지만, 국가는 사탄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속적인 일이나 육체와 관련된 일에는 등을 돌리고 개인적인 경건에만 관심을 가졌다. 사회적 혼란이나 무질서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그들은 성도가 국가의 공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심한 경우에는 국가를 원수로 여기고 적대시했다. 따라서 그들은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마저도 거부하기까지 했다.

2) 올바른 관계

지금까지 살펴 본 세 가지의 주장은 성경의 교훈과 거리가 있다. 성경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상하의 관계가 아닌 서로 독립적인 관계이며,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1) 교회와 국가는 서로 독립적인 관계에 있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교회와 국가는 각각 그 관여하는 영역이 다르다. 교회는 신령한 영역에 관여를 하고, 국가는 세속적인 영역에 관여한다. 이 두 영역에는 서로 구분이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구청장 행세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고위 관리라고 해서 교회에서까지 고위직 행세를 하려 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져야 한다(마 22:21). 우리는 이것을 정교분리(政敎分離) 또는 정종분리(政宗分離)의 원칙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빌라도 앞에서, 자신의 나라인 교회와 세상 나라를 분명하게 구분하셨다(요 18:36). 사도들께서도 교회의 사역인 전도와 교육에 대해서,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을 함이 마땅하다는 단호한 자세를 보이셨다(행 5:29). 그러므로 행정관리는 말씀이나 성례의 사역, 또는 천국열쇠의 권한을 자기의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신앙의 문제나 교회의 재정 관리 또는 직원 임면에 관여를 해서도 안 된다.

한편,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음부가 이기지 못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여(마 16:18), 교회와 국가의 권세를 혼돈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권세는 복음을 전파하고 성례를 거행하는 것이다. 교회의 권세로 국가의 권세를 억압하거나 침해를 해서는 안 된다. 행정관리가 만든 법을 바꾸거나 합법적인 규정을 폐지해서도 안 된다. 또 세속적인 규정이나 계약의 심리를 방해해서도 안 된다.

(2) 교회와 국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교회와 국가를 서로 배타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교회를 구성하는 교인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민은 교인이면서 동시에 국민이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의 각각 다른 부분으로 분리되어 사는 것이 아니다. 죽은 이후에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지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영혼과 육체가 서로 연합하여 삶을 유지해 나간다. 그러므로 교회와 국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4. 교회와 국가 간의  임무

교회와 국가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피차 해야 할 일은 각각 무엇인가

1) 교회가 국가에 대하여 할 일

교회는 국민 된 교인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국가가 하는 일에 상당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국가나 사회에서 성경말씀에 기초한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국가를 위한 기도는 필수이다. 그러나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건설적인 충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폭력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 밖의 할 일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언급을 하였음으로, 여기서는 생략을 하기로 하자.

2) 국가가 교회에 대하여 할 일

국가는 교회가 신령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와 지원을 해야 한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여서는 누구나 신앙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이 땅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일을 휴무케 하여 원활한 종교생활을 지원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행정관리는 보살피는 아버지처럼, 우리 모두의 주님이신 주님의 교회를 보호하되, 어느 한 교파를 다른 교파들보다 우대하지 않고, 교인들이 방해나 위험이 없이 자기의 모든 거룩한 기증들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하고 자유롭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도록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사 49:23). 그 나라의 사람과 명성을 보호하되, 효과적인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종교나 불신앙을 구실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과 폭력과 비난과 손상을 입히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고 또 모든 종교적이고 교회적인 회의들이 소란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회집될 수 있도록 명령을 발동할 의무가 있다(삼하 23:3, 딤전 2:1, 롬 13:4)"(제 23장 3항).

국가가 교회에 대하여 할 일은 그리스도인 위정자가 있을 때에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행정관리로 부름을 받으면, 그것을 받아들여 그 직책을 수행하는 것이 합당하다(잔 8:15, 16 롬 13:1-4). 적극적인 자세로 공직에 헌신하는 것도 필요하다. 골방이나 기도원에서 개인의 영적인 유익을 도모하는 것 못지 않게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도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5. 교회의 애국 운동

국가도 교회처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교회가 국가에 대하여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여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다(눅 23:28). 너희와 너희 자녀는 국가와 민족을 포함하는 말씀임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께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하셨을 때의 너와 네 집도 역시 국가와 민족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교회의 역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애국하는 태도를 지켜왔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 핍박의 이유는 근친결혼과 같은 부도덕한 교리나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야만적 행위를 가르치고, 로마 시가지에 방화를 했다는 등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더 큰 이유는 무신론자 또는 비애국자라는 것이었다. 로마 사람들은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섬기면서, 기독교인들에게도 황제숭배를 강요했다. 성도들의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무신론자 또는 비애국자라는 비난과 함께 온갖 핍박을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그 황제를 만드신 참되신 하나님께 황제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았다. 비록 비기독교인들이 다스리는 국가에 살면서도, 성도들은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진정한 시민으로서의 애국운동을 했었다.

성경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모두 애국자들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장군, 스코트란드의 존 낙스, 네델란드의 윌리암 오렌지 공(公), 프랑스의 쟌 다크, 미국의 조지 워싱톤 등은 성도가 어떻게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좋은 본을 보여 주었다.

성도들은 국가의 유익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국가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전쟁에라도 가담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방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또 피하기 위한 가능한 수단을 다 사용해 본 후 이후에, 마지막으로 고려를 해보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활발한 애국운동을 빌려왔다. 그 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엘리야나 예레미야 또는 다니엘 같은 심정을 가진 성도들의 부르짖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삼천리를 울리고 있다. 그러나 교인들의 숫자가 전 국민의 2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 역할은 너무 미약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기에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열 사람의 진정한 의인들이 요청된다. 그리고 실제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적극적인 애국의 실천이 요청된다. 우리가 이러한 자세로, 바로 지금 할 일 많은 이 동산에 일하는 일꾼으로 나서게 되면, 나라의 운명은 분명히 바뀌어질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국가의 안정은 매우 주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교회는 국가 안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해야 할 사명이 있다. 성도는 교인이면서 동시에 시민이 된 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와 국가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즉 자기가 살고 있는 국가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정당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시민으로서 또는 공직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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