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회 총회는 법통성을 계승하라

총대권에 대한 올바른 자기이해는 성총회가 되게 한다

소재열 | 기사입력 2010/09/18 [16:43]

제95회 총회는 법통성을 계승하라

총대권에 대한 올바른 자기이해는 성총회가 되게 한다

소재열 | 입력 : 2010/09/18 [16:43]
총회가 소집되어 총회관련 안건을 처리하는 현장에 참관하며 총회관련 기록역사와 사진자료를 위해 총회현장을 누빈지가 10년이 지났다. 그 이전 50여년 동안 총회에 출입하면서 사진기록을 남겼던 역사기록의 산증인인 허창희 장로로부터 원판필림 일체를 기증받아 본 교단의 역사기록을 남기기 위해 현장을 찾아 다닌다.

특히 한국장로교회의 역사적, 신학적 정체성에 관해 학문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이를 철학박사학위 논문으로 완성했다. 따라서 한국장로교회의 100년 넘는 역사의 기록물들과 관련 자료들을 상당히 확보하면서 한국장로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여기까지 숨가프게 달려왔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요, 이를 위해 누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 준 것도 아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필자의 대답은 사명의식이라고 답변하는 말 외에 할 말이 없다. 사명이기 때문에 하고, 좋아서 하는 일일 것이다. 필자는 원래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설교에 대해 20여 년 동안 목회자 세미나 주최, 연구, 연구물들을 문서로 출판하는 일에 매진했다.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보편적으로 설교를 못한다거나 성경해석에 문제가 있어 목회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교회 정치에 실패해서 교회가 혼란을 겪게 되고 분쟁이 발생된 것을 확인하게 됐다. 칼빈의 제자 베자(Theodore Beza)가 말한 “사탄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교의를 뒤엎기보다는 그보다 쉬운 교회정치를 뒤엎기를 희망한다”라는 말은 필자에게 심각하게 다가왔다.

“나는 정치에 관심없고 목회에만 전념한다”라는 말들은 목회와 정치를 이원론적으로 봄으로 “정치는 악하고 목회는 선하다”는 등식이 성립되는 환경 속에서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교단 직영신학교인 총신에서 조차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정치와 헌법에 관한 학점이수는 겨우 1학점에 불과할 정도이고 보면 목회자로서 출발 자체가 불완전하게 출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교계에서 정치꾼들이 교권을 장악하다 보니 올바른 정치에 대한 실천적인 이해에 관한 노력이나 실천은 요원했고, 오히려 학문적인 교회정치에 대한 연구는 은혜롭지 못한 자들이 교권장악을 위한 수단쯤으로 생각한 나머지 개혁신학적 입장에서의 교회정치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 노력들은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 교단의 현실이다.

또 총회가 다가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입법, 행정, 사법을 총관하는 최고회이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에 의하면 “인권보장이 확립되지 않고 더불어 권력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않는 국가는 헌법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권력분립은 프랑스와 미국의 제헌의회 심의에서 거의 신성불가침한 신념으로까지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분립은 우리 총회에서만큼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총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산하 전국 지교회의 최종적인 사법권과 행정권,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다. 어찌보면 총회가 모든 입법, 사법, 행정을 독점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총대들이 모여서 교단법을 만들고 모든 행정을 판단처리하며, 상고심의 사법권을 장악한다. 어찌 이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가?

이런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총대들이 권력을 남용하면 전국교회는 피눈물을 흘리게 돼 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의 형태에 대한 몰이해는 교단의 장래를 어렵게 할 뿐이다. 총회임원들은 특별위원회직과 겸임할 수 없다는 총회결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 정도로 권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한 인사들은 여러 위원회를 기웃거린다. 제95회 총회가 이에 관한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누가 총회의 권위를 믿고 따르겠는가?

총회가 회무를 진행하는 중에 폭력적인 언사와 행동은 현장에서 총회를 치리회로 변경하여 그 자리에서 추후 영원히 총회총대로 나올 수 없도록 치리하여 강력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총회질서를 바르게 잡을 수 없다. 참으로 불행한 일들이다.

우리들은 너무나 쉽게 상대방을 정죄하고 불법이라고 외친다. 자신이 상대방을 불법이라고 하면 불법이 되는가? 자신이 상대방을 죄인이라고 하면 죄인이 되는가? 아니다. 죄의 혐의는 있을지 몰라도, 불법의 혐의는 있을지 몰라도 죄인이거나 불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로지 사법권을 갖고 있는 치리회가 형벌을 가했을 때 우리는 그들을 유죄 판결을 받은 자라고 한다. 이런 판결을 받은 자를 “무흠”에 반대인 “유흠”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성경의 법과 양심이 법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제도권 아래서 사법절차에 의해 죄를 처단할 때에는 성문법이 우선이다. 장로회 헌법을 봐야 하고, 재판법인 권징조례를 봐야 한다. 그리고 총회가 결의한 결의들을 봐야 한다. 마치 이러한 결의들은 법률에 해당된다. 이러한 원칙들에 근거해서 “죄인”이거나 “불법”이라고 판결한다. 이때의 판결은 강제성을 띄고 있다.

공적 치리회가 "불법을 범했다"고 말하면 말한 그 사람이 재판관이 돼 버린다. 차라리 불법의 혐의가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불법의 혐의가 보일 경우 정당한 절차법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는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총회인 최고 치리회는 이러한 법적인 절차법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시행해야 하는 이유는 그러한 절차법을 따르지 않고는 법적 효력이 발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에서의 절차법은 생명과 같다. 얼마 전에 서울남부지법에서 나온 결정에 의하면 공동의회에서 제아무리 지난 회기의 재정결산에 관해 인준 결의가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공동의회 당시 약 24명의 회원들에 대하여는 아무런 근거 없이 회의 참석이 봉쇄되었고, 공동의회에서 반대 발언하는 자들을 제지시키므로 충분한 토론의 기회가 제공되지 아니한 채 인준 결의가 이루어 졌기 때문에 공동의회 재정 결산 인준 결의는 완전한 효력을 발생할 수 없다고 판단한바 있다.
 
이처럼 절차법은 중요하다. 이번 제95회 총회는 이러한 절차법이 바르게 시행되어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무엇이 절차법인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절차법에 관해 무지할 경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문제를 만들게 된다. 그러한 곳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없다.
 
이제 더이상 총회가 선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문제점들을 노출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지혜를 동원해야 한다. "너는 죽고 내가 살아야 한다"라는 비정한 원리가 총회에 적용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100년 동안의 총회 법통성이 꾼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총회장이라면 100년 동안의 법통성에 관해서 한번쯤이;라도 살펴보고 의사봉을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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