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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는 최성은 목사(새벽을여는교회)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대표기도는 신덕수 장로(대두대동교회)가 맡았다. 신장로는 “세계는 중동 전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혼란하고 어려운 가운데 있으며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조롱을 받는 시대 속에 있다”라고 기도했다.
이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광야에 길이 열리고 큰 산이 평지가 되는 은혜를 누리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이어 “한국교회와 총회에 새로운 영적 각성이 일어나고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 성령 충만한 교회로 세워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후 성경봉독은 성경선 목사가 역대하 20:31~37절 말씀을 봉독했다. 본문을 중심으로 정명호 목사(혜성교회)는 “깨진 항아리 인생은 되지 멉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정명호 목사는 “한국교회 안에 냉소주의가 자리 잡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진단했다. 그는 “세상은 더 이상 교회를 박해하지 않지만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교회가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목사는 여호사밧의 생애를 중심으로 세 가지 영적 문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관계의 문제’였다. 그는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아합과 아하시아와 동맹을 맺었던 일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연합과 동맹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기도회조차 기도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참석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아합과 아하시아와의 동맹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둘째는 ‘열정의 상실’이었다. 그는 여호사밧이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이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백성들이 변화되지 않았던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교회는 외침과 부흥집회는 많지만 실제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설교자가 포기하는 순간 설교를 통한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며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목사는 조용한 회개의 기도를 요청하며 “내 손은 정결하게 하시고, 내 가슴은 뜨겁게 하시며, 내 눈은 밝아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물을 담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를 파고 있다면 우리의 수고는 헛될 수 있다”며 예레미야 2:13절 말씀을 인용해 영적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명호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유대종교 랍비가 본문을 설교하는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라는 질문을 해 보았다. 신약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랍비의 설교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평가에 주목한다.
기독교는 지난 2천 년 동안 구약성경을 신약성경과 분리된 독립 문헌으로만 읽지 않았다. 교회는 구약을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계시의 통일성 안에서 해석하고 설교해 왔다. 이것이 사도적 전통 위에 선 기독교 설교의 기본 원리였다.
구약성경은 유대교 회당에서 읽히는 히브리어 성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대인 랍비들이 신약을 인정하지 않는 전제에서 구약을 해석한다면, 기독교 설교자는 신약의 빛 아래서 구약을 해석해야 한다. 기독교 강단은 유대교식 도덕 교훈이나 인물 중심의 역사 해설에 머물 수 없다.
역대기 역시 단순한 왕들의 성공과 실패를 기록한 역사서가 아니다. 역대기는 다윗 언약, 성전, 예배, 제사장적 질서, 하나님의 백성 회복이라는 언약과 구속의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을 설교할 때도 단순히 “관계가 잘못되었다”, “열정을 잃었다”,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인물 교훈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구약 본문을 기독교적으로 충분히 해석했다고 보기 어렵다.
구약 인물은 설교의 중심이 아니라 특별한 하나님 계시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설교의 중심은 언제나 삼위 하나님 중심이며,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여호사밧의 실패를 말한다면 그 실패는 인간 왕권의 한계를 드러내고,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언약에 반한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왕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런데 우리 교단을 대표하는 설교의 자리에서 행해진 설교는 교단의 신학에 대한 반영이며, 2천년 동안 지켜온 복음의 반영이다. 오늘날 일부 설교는 구약 본문을 인물의 성격 분석이나 리더십 강의, 조직 운영의 교훈으로 축소한다. 이런 설교는 청중에게 감동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 하나님의 언약, 구속의 흐름,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독교 강단의 본질을 충분히 감당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구약 설교가 신약성경과 연계된 설교가 아니라면 구태여 목사에게서만 설교를 들을 이유가 없다. 랍비의 설교가 훨씬 성경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설교는 랍비와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기독교 설교라기보다 종교적 교훈 강연에 가까워질 위험을 우리 모두가 안고 있다.
구약 인물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그 예언과 약속을 통해 결국 그리스도의 필요성과 복음의 은혜가 드러나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을 읽었던 방식이며, 교회가 2천 년 동안 지켜온 설교의 중심이다.
따라서 구약 역사서를 설교하면서 신약과의 통일성, 하나님의 언약, 구속의 성취,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성을 외면한다면 그 설교의 진정성은 엄중히 질문받아야 한다. 구약은 그리스도를 배제한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이 둘을 분리하는 설교는 성경 전체의 중심을 잃은 설교이다.
본 교단을 이끌어갈 우리 모든 목회자들은 강단의 역동적 복음만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개혁이요 갱신이며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 내용에 특정된 개인이나 관련 교회가 반론을 요구할 때 재반론을 조건으로 허락할 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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