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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부서기 유병희 목사(예우림교회)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저녁 집회는 이해중 장로(대남교회)의 대표기도가 있었다. 이해중 장로는 목사와 장로들이 본질에 충실하지 못했던 불충과 죄악을 회개하며, 이번 기도회를 통해 교단과 노회와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간구했다. 또한 전쟁과 테러, 기후 위기와 기근으로 고통받는 세계를 위해 기도하며, “기도만이 이 나라와 교단과 교회를 살리는 길”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임용태 목사(동명교회)가 빌립보서 1:20~21절을 봉독했다. 서울노회 장로합창단이 찬양 후 장창수 목사의 설교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장 목사는 설교 서두에서 참석자들에게 “100년 뒤에 목사님과 장로님은 같은 곳에 있을 것”이라며 “그러니 제발 좀 잘하자”고 권면했다.
장 목사는 사람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소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와 피 묻은 복음이 사라지면, 우리의 소망도 결국 돈과 성과 권력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설교자는 교회 안에도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교회 안에 있으나 복음의 감격이 없는 비그리스도인, 둘째는 이름뿐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셋째는 십자가와 천국의 감각을 붙들고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장 목사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음에도,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더 큰 사역 성공이나 명성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끄럽지 않은 삶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현재 맡겨진 직무와 의무에 충실한 삶, 하나님보다 앞선 우상을 두지 않는 삶, 세속에 물들지 않고 구별된 삶, 척하지 않는 진실한 삶, 작은 일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을 지키는 삶을 제시했다.
특히 장 목사는 교회와 교단 안의 세속화를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세상보다 교회가 더 세속화되고, 성도와 지도자들이 세상을 닮아가고 있음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문제”라며 “금권선거라는 말이 교회 안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총회 안에서도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답답하다”며 “노회는 노회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목사와 장로의 대화 속에서도 피 묻은 복음과 천국의 선포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목사는 사도 바울의 두 번째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말하는 담대함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담대함이 아니라, 예수를 증거하는 데 주눅 들지 않는 믿음의 용기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자족, 기쁨을 선택하는 삶을 강조했다. 빌립보서 전체의 주제가 기쁨임을 언급하며, 바울은 감옥과 같은 환경 속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했다고 전했다.
장 목사는 “기쁨은 환경이 아니라 선택이며, 동시에 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망과 불평을 선택할 것인지, 기쁨과 감사를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라며 “하루하루 기쁨을 연습하고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목사는 참석한 목사와 장로들에게 “여러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믿음의 담대함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만 존귀하게 하고, 천국에 이르기까지 기쁨과 감사를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설교의 핵심은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세속화되지 말아야 한다”, “척하지 말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예수만 존귀하게 해야 한다”, “기쁨과 감사를 선택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메시지들이 대부분 윤리적 권면과 삶의 태도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설교는 장시간 동안 교회 지도자들의 세속성, 금권선거, 형식적 신앙, 자화자찬, 세상 풍조를 닮아가는 교회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정작 왜 인간이 죄 아래에서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복음의 핵심 진술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물론 설교 속에 “십자가”, “복음”, “예수님의 은혜”라는 표현들은 반복해서 등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본문 해석의 중심축이 되기보다는 도덕적 교훈을 강화하기 위한 보조 언어처럼 사용된 측면이 강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단순히 “열심히 살아야 한다”거나 “세속화되지 말자”는 수준의 윤리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의와 자기 영광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론적 변화의 고백이다. 그러나 이날 설교는 바울의 복음적 정체성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천적 당위에 상당 부분 집중했다.
설교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낼 능력이 없는 존재다. 그래서 복음은 인간의 결단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선포한다. 인간의 실패와 죄악을 덮는 것은 도덕적 결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하지만 이날 설교는 죄인을 살리시는 복음의 능력보다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적용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다.
또한 설교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고 있다”는 위기의식과 지도자들에 대한 강한 질책이었다. 실제로 한국교회의 세속화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복음 설교는 단순한 시대 비판이나 도덕적 훈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결국 죄인을 살리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복음이다.
특히 설교 중 “금권선거”, “세속화”, “자화자찬”, “척하는 신앙” 등에 대한 직설적 비판은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지만, 자칫하면 복음을 통한 회복보다 종교적 자기반성과 자기개선 중심의 메시지로 들릴 위험도 있었다.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의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복음 없는 교훈 설교다. 성도들에게 더 착하게 살라고 말하고, 더 거룩하게 살라고 외치고, 세속화되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정작 왜 인간이 끝없이 실패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왜 십자가 외에는 답이 없는지를 깊이 선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설교 역시 교단과 교회의 현실을 향한 문제의식은 분명했지만, 복음 자체의 선포보다는 교훈과 적용에 더 무게가 실렸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한국교회식 강연형 설교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기도회는 단순한 영적 각성 집회가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여야 한다. 목사와 장로들이 정말 들어야 할 메시지는 “더 잘하라”는 도덕적 요구 이전에,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소망인가”에 대한 삼위일체론적 선포이다. 교회를 살리는 것은 인간의 결심이 아니라 복음이다. 그리고 교단을 다시 세우는 힘 역시 윤리적 구호가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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