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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은사 운동이라 부르는 운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경과 맞지 않고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은사라고 한다. 이런 이들은 은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은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것도 아무 것에나 은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성경은 은사를 신령한 것이라고 한다.
고전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원문은 신령한 것들(τῶν πνευματικῶν)이 복수로 나온다. 그리고 정관사도 복수이다. 즉 ‘그 신령한 것들’이라는 의미이다(Novum Testamentum Graece, 28 Edition, 1Cor 12:1). 은사는 신령한 것들이다. 고전 12:1에 보면 은사는 신령한 것 즉 성령에 속한 것으로 자연발생적이거나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따라서 우리가 달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은사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나온다. 고전 12:4절에는 은사들이라고 나온다.
고전 12:4 “은사(χαρισμάτων, 은사들은)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즉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며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이며,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은사들은 다양성을 가진다. 하나 혹은 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은사는 직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롬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롬 12:7절에 보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는 '섬김, 집사, 구제'라는 뜻이다(Kittel & Friedrich,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TDNT), v.2.87). 또 은사는 사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전 12:6). 이것은 은사를 가지고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돕고 섬기는 선한 능력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은사를 통해 나타나고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다.
성경은 은사를 선물로 표현한다(행 10:25; 고후 9:15; 히 6:4; 약 1:17). 은사는 우리의 요구에 따라서 주어지거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 선물이고 은혜이다. 롬 12:1-13; 고전 12:8-31; 엡 4:11-12절을 자세히 보면 은사들이 목록이 나온다. 목록을 보면 겹치는 것도 있지만 상세히 보면 20여 가지가 된다. 고전 12:8-10절은 은사의 직분적 부분이 나온다. 사도, 선지자, 교사 등이 나온다. 롬 12:6-8절에는 예언, 섬김, 교육, 위로, 구제, 다스림, 긍휼 등의 은사들이 나온다. 이것은 사역의 내용적 면을 보여준다.
(1) 은사의 원어적 의미
은사(恩賜)는 한자를 풀어보면 ‘은혜 은’+‘줄 사’이다. 따라서 이 단어의 한자적 의미는 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물건을 내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는 Spiritual gift라고 되어 있다. ‘영적인 은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히브리어는 이 은사를 토브(טוֹב)라고 표기한다(Waltke & Harris & Archer,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TWOT), 793). 이것을 성경은 은총(사 63:7, 호 3:5), 은혜(시 27:13), 선(출 33:19, 시 25:7), 복(느 9:25, 35, 시 128:5)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했다.
헬라어는 카리스마(χάρισμα)라고 한다(Kittel & Friedrich(ed),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TDNT), v.9. 402). 이것은 히브리어 토브의 대역어이며 그 뜻은 ‘은혜, 호의, 은사’ 등의 의미로 번역된다.
(2) 성경의 은사
성경은 은사를 가리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롬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본문은 은사를 하나로 말하지 않고 복수로 말한다. 원문은 ‘은사들’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은사들은 내가 원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대로 주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선물이다. 선물은 내가 달라고 해서 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는 분의 마음대로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선물이다.
그런데 “받은”(ἔχοντες)이라는 단어가 현재분사이다. ‘내가 받아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Novum Testamentum Graece, 28 Edition, Rom 12:6). 하나님은 로마서가 기록될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은사를 주셨다. 그 은사의 기능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다. 이런 역사적 상황과 문맥을 알아야 은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로마교회에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오늘 나에게도 은사를 달라는 식의 적용은 성경 이해가 바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라고 한다. 여기 “대로”라는 전치사를 잘 보아야 하는데 이 전치사는 카타(κατὰ)이다. 이 전치사는 목적격 뒤에 오면 ‘따라서, 의해서’라는 의미가 된다. 즉 ‘그 은혜를 따라서, 그 은혜에 의해서’라는 의미가 된다(Bauer,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rd, “κατὰ”).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여기서도 은사를 복수로 쓴다. 그래서 은사는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은사주의자들과 신사도 운동이 주장하는 것처럼 방언, 예언, 병 고침, 귀신 추방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런 은사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은사를 주시는 분이 성령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러나’(δέ)라는 접속사를 쓰고 있다(Novum Testamentum Graece, 28 Edition, 1Cor 12:4). 일부러 쓴 것이다. 은사가 핵심이 아니라 성령이 핵심이다.
성경은 은사를 다양하게 언급한다. 롬 12장, 고전 12장, 엡 4장에 구체적으로 나온다.
롬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전 12:4-11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 12:28-31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엡 4:7-12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은사들은 모두 중요하고 소중하다. 어느 것 하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은사주의와 신사도 운동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 기적적이고 신비한 것만 중시한다.
(3) 학자들의 견해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리처드 개핀(R. Gaffin)은 신약에서 사도는 특수한 임무를 위해 선발된 대표자들이고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교회사의 직분에서 일시적으로만 나타난다고 했다(R. Gaffin, 「성령은사론」, 109). 칼빈(Calvin) 역시 사도직의 소멸을 주장했다(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4.3.4).
존 오웬(J. Owen)은 종교개혁 시대와 20세기 사이에 성령의 역사를 가장 넓게 다루었다. 성령의 특수적 은사와 일반적 은사를 처음으로 구분한 사람이다. 그는 특수 은사를 방언, 기적, 병 고침, 사도, 예언, 전도로 꼽았다. 그는 이런 은사가 사도 시대에 국한된 것이라고 보았다(안영복, 「성령론 어떻게 연구할까」, 81).
화란의 신학자이며 총리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성령의 부어 주심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과는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령의 나누어 주심이 더 이상 방언과 같은 특별한 은사를 수반하지 않는다고 했다(변종길, 「성령과 구속사」, 91).
프린스턴신학교의 변증학자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는 「기독교 기적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은사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권위를 부여하여 임명하신 대리인들로서의 사도들이 지닌 신임장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기능은 그 은사들은 분명히 사도들의 교회에 한정시켰으며 당연히 사도들의 교회와 함께 사라졌다.”(워필드, 「기독교 기적론」, 12)
워필드의 뒤를 잇는 개혁주의 신학자 리처드 개핀(R. Gaffin)은 워필드의 입장을 따라 특별한 방언과 예언의 은사들은 계시적 성경을 가진 은사들이기 때문에 성경의 정경 작업이 끝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R. Gaffin, 「성령은사론」, 60).
(4) 은사는 믿음의 척도인가?
①은사는 자기 과시용인가?
신비주의, 은사주의, 신사도 운동은 은사를 자기 과시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은 은사를 자기 과시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과시용인 경우가 많다. 특히 신학을 바르게 그리고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는 이들 중에는 더욱더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 정규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수업한 자들은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을 공부하게 된다. 조직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되면 은사의 문제를 다루게 되고, 은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게 된다.
즉 조직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다루는 계시론(성경론), 삼위 하나님과 사역을 다루는 신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다루는 인간론, 구속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는 기독론, 죄인인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회복되고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다루는 구원론, 구원받은 성도의 모임을 다루는 교회론,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다루는 종말론을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정통신학 수업을 하지 않은 사람은 조직신학이라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한다. 그리고 성경과 신학보다는 자신의 체험이나 기적, 신비한 경험을 더 중시한다. 그것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과 신학이 아니라 다른 것을 가지고 성도를 이끌고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방법이 신비적이고 경험적 방법이다.
이런 형태는 교회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은사주의, 신비주의, 신사도 운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도라 자칭하는 자들은 신학 수업을 제대로 받은 이들이 거의 없다. 만약 그들이 신학 수업을 바르게 받았다면 스스로를 사도라 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은사를 자기 과시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②은사가 믿음의 척도인가?
신비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은 은사를 믿음의 척도 혹은 구원받은 표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은사를 가진 자신이 이런 은사가 없는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자랑하고 교만에 빠진다. 그러나 성경은 은사가 믿음의 척도라 말하지 않는다. 은사가 구원의 조건이나 증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은사는 특별한 상황, 시대에 주어진 것이며, 그 은사를 자신의 과시나 믿음의 척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세우고 봉사하는데 필요한 재능이었다.
따라서 은사를 가지고 우월성을 따지거나 자기 과시용 혹은 믿음의 높고 낮음을 가리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은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성경적 은사론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이라 하겠다.
③은사는 믿음의 수준을 보여주는가?
은사주의자들과 신비주의자들, 신사도 운동에 빠진 이들은 은사를 몇 개를 소유했는가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차별한다. 더 많은 은사를 가진 이가 높은 믿음을 가졌다고 한다. 또 가르치는 은사보다는 예언하고 방언하고 병 고치는 은사가 더 신비하고 높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성경에 제시되지 않은 것이며 그 근거를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은사는 믿음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가 아니다. 믿음은 선물이고 인간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은사가 하나님의 선물이듯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은사가 믿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한때 한국교회는 병 고치고 귀신을 추방하고 방언하고 예언하는 은사를 가진 이들을 추앙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들보다 그런 신비한 능력을 행하는 이들을 더 추종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했다. 이런 자들을 추종한 사람들은 재산을 다 빼앗기고 가정은 파괴되고 아이들은 보육원으로 친척 집으로 흩어져야 했다. 아직도 일부는 남아서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이단이고 사이비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후회하지만 소용이 없다. 은사는 믿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절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계속)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 내용에 특정된 개인이나 관련 교회가 반론을 요구할 때 재반론을 조건으로 허락할 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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