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자유게시판 리폼드뉴스 후원 동영상게시판 교역자 청빙 교회 및 각종 행사 책 홍보 공지 |
|
![]() |
|
이번 주일은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종려주일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오셨고 두 제자를 미리 보내십니다. 그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라고 하십니다.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보니 매인 나귀와 그 새끼가 함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주인에게 나귀 새끼를 풀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누가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즉시 허락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서 나귀 새끼를 풀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미 구약에 예언된 사건이었습니다.
슥 9: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이미 하나님의 아들 왕이 임하시면 그는 공의롭고 구원을 베풀고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고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왕이시고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예언해 주신 바로 그 왕,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두 제자를 보내시고 나귀 새끼를 풀어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나귀 새끼 위에 그들의 겉옷을 얹어 예수님께서 타실 수 있도록 안장을 만들어 드립니다. 이제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이것을 보고 무리의 대다수가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폈습니다.
이것은 왕위 등극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앞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했습니다(마 2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 분이 누구신가’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했습니다(마 21:11).
그래서 교회 역사를 보면 이 종려주일을 호산나주일이라 불렀습니다. AD 385년에 「에게리아의 순례집」에 보면 이 종려주일에 대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동로마교회에 속한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 행사를 열어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서로마교회는 애도의 종려주일을 맞이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8)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는 60-70년 경에 기록된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 멸망하기 직전에 기록된 성경입니다. 당시에는 유대교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후 유대교는 예수를 나사렛 괴수, 이단으로 규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 역시 체포하여 처형하고자 했습니다. 교회에는 많은 박해가 주어집니다. 그 가운데서 히브리서가 기록됩니다. 유대교가 십자가에 달아 죽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자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합니다(8)
히브리서 5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원래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예물과 속죄제를 드리는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지만 아론의 후손 대제사장과 달리 연약한 분이 아니고 죄인이 아닙니다. 그분은 스스로 영광을 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셨습니다(1-6).
그리고 그분은 이 땅에 사람으로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7).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유대교는 예수를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구속을 완성하십니다.
따라서 유대교의 예수에 대한 개념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시고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이십니다. 그분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주어지고 그분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저주와 심판이 주어집니다. 따라서 그분은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도 되고 안 오셔도 되는 분입니다. 그분 자체가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요 1:1-3).
2. 고난으로 순종하신 그리스도(8-10)
그런데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자체가 고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다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고난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동정녀 몸에서 나시고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들과 동일한 삶을 사셨습니다. 아픔, 고통, 슬픔을 다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하십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침 뱉음과 모욕을 당하시고 극악한 사형수가 당하는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거부하지 않고 순종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순종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눅 22:42절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합니다(9)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근원”(αιτιος)는 ‘원인자, 원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구원의 원인, 근거가 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으면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실패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자기 목숨을 희생 제물로 내어주셔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근거,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이 땅에 오셔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결론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난주간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직접 체험하면서 손에 못을 박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랑을 생각하면서 감사함으로 믿음 안에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 내용에 특정된 개인이나 관련 교회가 반론을 요구할 때 재반론을 조건으로 허락할 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목록
|
성경해석/설교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