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신사도 운동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7

김순정 | 기사입력 2026/03/28 [08:16]

[논문] 신사도 운동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7

김순정 | 입력 : 2026/03/2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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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언 관련 문제들

 

성경의 예언과 신사도의 예언은 같은 것인가?

 

신사도 운동가들은 성경의 예언과 자신들의 예언을 같은 것, 동격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부 운동가들은 자신의 예언을 성경의 예언 위에 놓고 있다. 이것 자체가 문제이다. 예언에 대한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성경에 예언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에 자신들도 예언을 한다는 식으로 해석과 적용을 엉터리로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계시를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이다. 따라서 계시 방편적 의미의 예언이다. 이 예언은 오늘날 점쟁이들이 사람들의 앞날을 예언해 주고, 나라의 미래를 점치는 식의 예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구속의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역사 속에서 진행해 나가시는지 선지자들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이고 그 예언은 성경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가들의 예언은 이런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미래, 혹 나라의 미래, 교회의 미래 등을 예언한다. 성경에는 구속의 역사를 떠난 예언은 주신 일이 없다. 개인에게 주어진 예언, 교회에 주어진 예언, 나라에 주어진 예언도 모두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역에 대한 것이지 신사도 운동가들의 예언들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 국가적인 것, 교회적인 것이 아니다.

 

계시적 예언과 오늘날 신사도 운동의 예언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하고 그들의 예언에 대한 개념과 인식, 해석과 적용은 엉터리라고 보아야 한다.

 

예언은 계속되는가?

 

신사도 운동은 예언이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언이 계속된다면 성경도 계속해서 분량이 늘어나야 한다. 성경의 예언은 성경 기록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사도 운동의 예언이 성경의 예언과 같은 것이고 동격이라면 성경도 66권으로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기록되어야 한다.

 

통일교의 원리강론, 이단 교주들의 저서들과 같이 성경과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러나 세계성서공회는 신사도 운동가들의 예언을 성경에 첨가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들의 예언은 성경 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왈도파(Waldenses), 알비파(Albigenses), 쟌센파(Jansenists), 초기의 퀘이커파(Quakers), 셰이커파(Shakers), 어빙파(Irvingtes), 몬타누스(Montanus)파 등 수 많은 이단들이 같은 주장을 했고 정통교회는 그들을 이단으로 결의했다. 신사도 운동의 예언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성경이 계시의 종결을 말하기 때문에 계시는 종결되었고 계시의 방편 중 하나인 예언도 그쳤다. 프린스턴신학교의 변증신학자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은사의 중단(The Cesseation of the Chrismata)이라는 책에서 이를 강조하였다(김병학, “신약 시대 이후 예언 은사의 중단성과 계속성에 관한 일 연구,” 22).

 

또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리처드 개핀(Richard B. Gaffin Jr)은 이중 계시관이 계시의 언약적 특징과 구속 역사적 특징을 고려할 때 성경계시관과 도무지 맞지 않는다고 예언의 지속성을 반대했다(김병학, “신약 시대 이후 예언 은사의 중단성과 계속성에 관한 일 연구,” 35).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무엇인가? 점쟁이들이 예언하는 지극히 개인적 미래를 말하는 것인가? 특정 교회의 미래를 말하는 것인가? 특정 국가의 미래를 말하는 것인가? 모두 성경의 예언과 다른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와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예언이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을 범죄로 유혹한 사탄에게 벌을 내리신다. 그런데 그 벌이 예언으로 되어 있다. 그 예언은 선언과 선포적 형태를 가진다. 이 예언을 자세히 보면 장차 신약에 오실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을 예언하고 있다.

 

원문에 보면 되게 하고”(אָשִׁית)가 칼미완료형이다. 즉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것이다. 정확한 번역은 되게 할 것이다이다. 또한 상하게 할 것이요”(יְשׁוּפְךָ)가 칼미완료형이다. ‘그가 너의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이것도 예언적 의미이다. 너는 그의 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תְּשׁוּפֶנּו)도 칼미완료형이다. ‘네가 그의 을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BHS), Gen 3:15).

 

구약학자 카일(Keil)은 창 3:15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이 영적인 씨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달했으며, 아담의 족보는 그리스도 안에서 단절되었고,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둘째 아담으로서 새롭게 되며, 그분에 의해 본래의 높임과 하나님을 닮음으로 회복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여자의 씨이시며, 사탄을 발 아래 짓밟으시는 분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고 그분께서 오시기 전에 옛 뱀과 싸움을 지속했던 여자의 후손의 머리이시며, 또한 모든 민족 가운데서 모여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모든 사람들의 머리이시며, 그분은 그 몸의 머리(16:20)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Genesis, 3:15)

 

이 창 3:15의 예언은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따라서 바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3:15절과 연결해서 보면 여자, 아들()가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 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을 의미한다. 즉 구속언약의 완성의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찼다는 의미이다. 개역개정은 이것을 그냥 라고만 번역했다. 그러나 원문은 정관사가 붙어 있다. ‘그 때’(τοχρόνου)라는 의미이다(Novum Testamentum Graece, 28 Edition, Gal 4:4). 이것이 지시하는 것은 창 3:15절에 예언된 것이 성취되는 그 때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의 예언은 개인에 대한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의 예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예언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

  

예언이 성경보다 더 높은 것인가?

 

신사도 운동의 예언은 성경보다 높은 차원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오늘날도 예언이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또 자신들에게만 예언이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면 이단이다. 성경보다 더 권위가 있는 예언은 없다. 성경으로 그들의 예언이 사실인지, 맞은 지, 하나님의 뜻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성경이 기준이지 그들의 예언이 기준이 아니다.

 

성경은 지금까지 역사가 진행되어 오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철학, 생각, 뜻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것이다. 그 계시는 변함이 없고 반드시 성취되었다. 만일 신사도 운동가들의 예언이 사실이라면 성경과 동일해야 하고 성경과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성경의 계시가 부족해서 그들에게 예언이 계속 주어진다면 성경의 필요성, 완전성은 부인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 자체로 필요하고 완전하다. 더 이상 다른 계시, 다른 예언은 필요하지 않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장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

 

1장 성경에 관하여본성의 빛과 또 창조와 섭리의 일들이 하나님의 선과 지혜와 권능을 나타내어 사람이 핑계할 수 없게 하나(1), 그것들이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의 뜻에 관한 지식을 충분히 주지는 못한다.(2) 그러므로 주께서는 여러 때에 여러 방식으로 자기의 교회에 대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며 자기의 뜻을 여러 방식으로 자기의 교회에 대하여 자신을 계시 하시며 자기의 뜻을 선언하시는 것을(3), 그리고 후에는 진리를더 잘 보존하시고 전파하시며, 또 육체의 부패와 사단과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견고하게 설립하시고 위안하시기 위하여 그 동일한 진리를 전부 기록에 맡기시기를 기뻐하셨다(4).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한 것으로 만드니(5),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신 이전의 방법은 지금 정지 되었다(6).(1) 1:1920, 2:1415, 1:32 (2) 고전 1:21, 2:1314, 2:912, 4:12, 10:1314 (3) 1:12, 1:1112, 4:1214 (4) 24:27, 딤후 3:16, 벧후 3:1516 (5) 16:2931, 2:13, 딤후 3:1516, 벧후 1:10 (6) 이 진술은 주로 교회의 경험과 관찰로부터 인출되나,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수도 있다(16:29, 20:29, 31).”

  

정규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일이 없는 마이크 비클(Michael Leloy Bickle)은 스스로를 사도라고 주장하면서 신학교를 세워 학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2011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했고 그는 인터뷰에서 동료들이 예언을 하는데 다 맞는냐는 질문에 80% 정도는 가짜라고 대답했다(김재성,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122). 그들의 예언은 가짜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들의 예언을 맞다고 인정해 준다 해도 그들의 예언이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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