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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은 신사도 운동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제시한다.
1. 저들은 스스로를 사도, 선지자로 자처한다. 2.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예언이라는 것을 전하고 따르고 있다. 3. 기름 부음이라는 개념을 신봉하면서 이적 등을 강조한다. 괴이한 소리 현상, 쓰러짐, 술 취한 듯 비틀거림, 혀가 풀려서 웅얼거림, 강력한 전기 자극을 경험하는 현상, 울음, 금이빨, 금가루, 웃음, 치유 등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4. 중보기도를 통한 영적 전쟁을 강조함. 5. 신비주의적 경건 사상과 충성과 헌신을 강조하는 ‘신부운동’, ‘군대 개념의 신앙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6. 피터 와그너의 이론을 추종하며 영적 전쟁을 시작하기 전 귀신의 진지를 파악하는 ‘영적 도해’(Spiritual Mapping), '땅 밟기 중보기도'(Prayer Walk), 선포기도, 7대 산 정복 운동, 부의 이동, 일터교회와 일터 사도, 동일시 회개(International Repentance Prayer)등이 신사도 운동 사상이다. 7. 스스로 회개하여 구원을 얻고 유지한다는 율법적 회개를 강조한다. 8. 극단적인 이스라엘 중심의 종말론을 가리킨다. ‘백투예루살렘’, ‘이스라엘 회복 운동’이다(정이철,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47-51).
1. 예언 사역에 대한 비판
오늘날에도 예언이 지속된다는 주장은 흔히 신비주의자들, 이단, 사이비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이 신사도 운동에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상은 신비주의나 이단, 사이비의 사상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신사도 운동의 사역 가운데 사도 됨의 중요한 기준과 특징 중 하나는 예언이다.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기초하여 비전을 선포하는 것이다(Wagner, 「오늘날의 사도」, 45).
신사도 운동가 브래드 저삭(Brad Jersak)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어느 아침 나는 그동안 잘 가지 않던 한 북 카페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느꼈다. 그래서 즉시, 그곳으로 갔다.....“주님, 오늘 하실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때 맞은 편 탁자에 한 젊은 여자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님, 저 여자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려 하십니까?” 그때 주님의 응답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여자는 만성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드디어 나는 결심하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Brad Jersak, 「내양은 내음성을 듣는다」, 89)
또 다른 신사도 운동가 릭 조이너(Rick Joyner)의 예언 사역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가장 낮은 단계는 “느낌(impressions)”이다. 오늘날 예언이라고 불리는 것들 대부분은 가장 낮은 단계인 느낌(impressions)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우리가 선호하는 교리, 기분, 편견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혼탁해질 때가 많다고 한다(Joyner, 「예언사역」, 33).
그 다음 단계는 느낌보다 높은 “환상(Visions)”이다. 이것은 영화의 화면처럼 보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환상은 상징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다음 단계는 주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이다. 성령의 기름 부음이라 불리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특별한 조명을 준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의 편견, 교리에 영향을 받는다(Joyner.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15).
그 다음에 주어지는 단계는 열린 환상(open vision)”이다. 그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 느낌보다 높은 예언사역이다. 이런 계시는 자주 주어지지 않고 매우 중대한 말씀을 주실 때 주님이 하신다(Joyner, 「예언사역」, 104).
또 꿈이 있다. 일반적으로 꿈은 낮 동안에 느낀 것을 꾸게 되는데 대부분은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꿈은 당시에는 모르지만 보통 알 수 있다. 또 높은 단계에 있는 예언적 체험에는 비몽사몽 즉 입신으로 부르는 단계가 있다. 에스겔이 경험하고 요한이 경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Joyner,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16).
(1) 성경의 예언
성경에 나오는 ‘예언’은 나바(נָבָא)이다. 이 단어는 ‘예언하다’는 동사이고 명사로는 나비(נָבִיא)이다. 이 단어는 ‘예언자, 대언자, 선지자’라는 의미이다(Waltke & Harris & Archer,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TWOT), 1277).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이 된 사람을 뜻한다. 신약성경에는 프롭페튜오(προφητεία)로 나온다. 이 단어는 ‘예언, 예언의 은사, 예언의 말씀’이라는 의미이다(Kittel & Friedrich,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TDNT), v.6. 781).
예언은 신에게 계시를 전달받는 일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계시를 주셨고 그 계시를 전하게 하셨다. 예언자 혹은 선지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계시를 기록하거나 구두로 전하는 자이다.
(2) 예언의 종결성
오늘날 예언이 종결되었는가 아니면 계속되는가의 문제는 신학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계시의 종결성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대표적인 말씀은 고전 13:8절이다.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Ἡ ἀγάπη οὐδέποτε ⸀πίπτει. εἴτε δὲ προφητεῖαι, καταργηθήσονται· εἴτε γλῶσσαι, παύσονται· εἴτε γνῶσις, καταργηθήσεται.)
사랑과 예언, 방언, 지식의 은사를 비교하고 있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사랑은 ‘그 사랑’이라는 단수로 쓰였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예언”(προφητεῖαι), “방언”(γλῶσσαι)은 모두 복수로 쓰였다(Novum Testamentum Graece, 28 Edition, 1Cor 13:8). 사랑은 언제까지 없어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예언은 폐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방언도 그칠 것이다.’ 그리고 ‘지식도 폐하게 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예언과 방언, 지식의 은사의 종결성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영원한 것이지만 다른 은사들은 다 사라진다는 예고를 담고 있다. 이것이 언제 없어지는가? 그것은 학자들마다 그리고 교파들마다 견해 차이가 있다. 그러나 직통계시, 계시의 계속성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아닌 이상은 성경 66권이 종결로 그 은사들은 종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신사도 운동에서 예언의 계속성을 주장하는 것은 이단적 견해이고, 정통교회와 성경, 개혁신학과 전혀 다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3) 신학자들의 견해들
교회사를 보면 예언의 계속성을 주장한 이들은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예를 들어 왈도파(Waldenses), 알비파(Albigenses), 쟌센파(Jansenists), 초기의 퀘이커파(Quakers), 셰이커파(Shakers), 어빙파(Irvingtes), 몬타누스(Montanus)파들이 대표적 이단들이다.
프린스턴신학교의 변증신학자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는 「은사의 중단」(The Cesseation of the Chrismata)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사도들의 선택은 구속 사건의 완성을 위한 주님의 위대한 계획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은사를 주셨고, 그 은사들이 고전 12-14장에 나타난다.
그 은사들은 평범한 비기적적 은사와 비범한 기적적 은사로 구분된다. 이러한 기적적 은사들은 사도적인 교회들의 특징으로 사도 시대에 한정되고 사도 시대에 속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기적적 은사들은 사도직의 중단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보았다(김병학, “신약 시대 이후 예언 은사의 중단성과 계속성에 관한 일 연구,” 22).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리처드 개핀(Richard B. Gaffin Jr)은 이중 계시관이 계시의 언약적 특징과 구속 역사적 특징을 고려할 때 성경계시관과 도무지 맞지 않는다고 했다(김병학, “신약 시대 이후 예언 은사의 중단성과 계속성에 관한 일 연구,” 35).
다시 말해서 지금도 여전히 예언이 지속된다는 주장은 구원에 필요한 정경적 계시와 그룹을 위한 사적 계시라는 이중 계시관을 주장하는 것인데 이런 이중 계시관은 성경계시관과 전혀 맞지 않는다. 계시는 하나이지 성경계시를 위한 것, 개인을 위한 것이 따로 있지 않다. 따라서 오늘날 계시의 방편으로 주어진 예언은 따로 지속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서철원 박사는 계시의 종결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모든 성경계시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고 궁극적인 구원이 이루어졌으므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계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고 궁극적인 계시이므로 더 이상 사소한 계시가 계속될 필요가 전혀 없다.”(서철원, 「신학서론」, 249)
예언이라는 것은 계시의 방편 중 하나이다. 따라서 계시의 종결은 예언의 종결을 의미한다. 아직도 예언이 지속되고 계속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고 이단적 주장이다.(계속)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 내용에 특정된 개인이나 관련 교회가 반론을 요구할 때 재반론을 조건으로 허락할 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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