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자유게시판 리폼드뉴스 후원 동영상게시판 교역자 청빙 교회 및 각종 행사 책 홍보 공지 |
|
![]() |
(리폼드뉴스) 오늘날 교회의 예배 순서에 반드시 들어가 있는 축도는 어떤 의미인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 ‘축원하옵나이다’라고 마무리한다. 그리고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은 ‘있을지어다’라고 마무리한다. 이 차이는 축도를 기도문으로 보는지 아니면 선언으로 보는지 그 신학적, 해석학적 차이에 있다.
통합측과 같이 ‘축원하옵나이다’로 마무리하는 것은 축도를 기도문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합동측과 같이 ‘있을지어다’라고 마무리하는 것은 축도를 선언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성경해석과 신학적 접근이 바르게 되어야 해결되는 문제이다.
고린도후서 13:13절
일반적으로 목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축도문은 고후 13:13절이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것은 바울의 축도문이다. 내용은 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를 한다. 한글개역판이나 개정판은 모두 “있을지어다”라고 번역했다. 그래서 교회들은 ‘있을지어다’로 성경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문은 보면 ‘그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ἡ χάρις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가 먼저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를 주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 하나님의 그 사랑’(ἡ ἀγάπη τοῦ θεοῦ)이라고 나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삼위 하나님 성령을 언급한다. 그 성령의 그 교통하심(ἡ κοινωνία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으로 나온다(Novum Testamentum Graece(Nestle-Aland 28 Edition), (Deutsche Bibelgesellschaft, Stuttgart, 2012), 2Cor 13:1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통하심이라는 단어들 사이에 동등한 관계를 나타내는 등위접속사(καὶ)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성자, 성부, 성령 하나님이 각자의 인격체이시고 동시에 동등한 한 본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세 위격(성부, 성자, 성령)이면서 동시에 한 본체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계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에는 ‘너희 모두와 함께’(μετὰ πάντων ⸀ὑμῶν)라고 나온다(Novum Testamentum Graece(Nestle-Aland 28 Edition), 2Cor 13:13). 신기한 것은 이 문장에 동사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있을지어다’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지 ‘축원하옵나이다’로 해야 하는지 혼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민 6:22-27절
장로교회 원리와 개혁신학을 체계화한 칼빈(Calvin)은 고린도후서 13:13절과 함께 민수기 6장의 제사장 축도문을 예배시간에 사용했다. 민수기 6:22-27절의 축도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민 6:22-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 축도문은 모세가 만든 것이 아니고 아론이 만든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22) 이 제사장 축도문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것이다. ‘말씀하다’는 단어가 피엘형(יְדַבֵּר)이다(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BHS), (Deutsche Bibelgesellschaft, Stuttgart, 1977), Num 6:22).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강력하게 명령하셨다’는 뜻이다(Waltke & Harris & Archer,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TWOT), 399).
무엇을 명하셨는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이라고 기록하는데 여기 이르기를 역시 피엘명령법(דַּבֵּר)이다(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BHS), Num 6:22). 번역하면 ‘강력하게 명하라, 확실하게 명령하라’가 된다(Waltke & Harris & Archer,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TWOT), 118).
하나님은 모세에게 강력하게 명하시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즉 제사장들에게 명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처럼 이 명령은 대단히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당시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위한 속죄의 제사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을 맡은 직분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다고 자원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선택하는 직분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선택과 임명이었다. 그 직분이 아론과 그의 가문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라고 하셨다.
여기 축복하다(בָּרַךְ)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는 사람에 대하여는 ‘축복하다, 인사하다, 복을 주다, 축하하다’는 의미로 쓰이고 하나님께는 대하여는 ‘송축하다, 경배하다, 높이다’는 의미로 쓰인다(TWOT, 285). 그런데 원문은 이 단어의 피엘미완료형(תְבָרֲכו)이 쓰였다(BHS, Num 6:23). 강한 명령의 의미이다. 그래서 바르게 번역하면 ‘너희는 온전히 축복하라, 너희는 확실하게 축하하라’는 의미가 된다.
제사장은 사람이고 사람은 복을 주는 자가 아니라 복을 비는 자이다. 그래서 사람은 복을 줄 수 없고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기하게 제사장들에게 복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복을 선언하라고 말씀한다. 구체적으로 축도문의 형식을 보면 기도인지 아니면 선언인지 알 수 있다.
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여호와가 세 번 등장한다.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이 축도문에 근거하여 고후 13:13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으로 삼위 하나님을 언급한다. 동일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여호와의 이름이 세 번 언급되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성경도 삼위일체를 이처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를 하는 것이다.
24절에서 “네게 복을 주시고”(יְבָרֶךְךָ)가 피엘미완료형이다(BHS, Num 6:24). 또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יִשְׁמְרֶך)도 칼미완료형이다(BHS, Num 6:24). 그런데 미완료형이기 때문에 미래형으로 번역하면 문장의 의미가 맞지 않는다. 미완료형으로 번역하면 ‘너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너를 지키시기를 원할 것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이것은 명령(선언)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25절 역시 “비추사”(יָאֵר)가 히필미완료형이다(BHS, Num 6:25). 역시 명령(선언)의 의미이다. 그 뒤에 나오는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יחֻנֶּךּ) 역시 칼미완료형이다(BHS, Num 6:25). 그래서 이것도 명령(선언)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26절에 나오는 “드사”(יִשָּׂא)라는 단어도 칼미완료형이다(BHS, Num 6:26). 역시 미래형으로 보면 문장의 의미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도 명령(선언)으로 보아야 적절하다. 또 뒤에 나오는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יָשֵׂם)는 단어도 칼미완료형이다(BHS, Num 6:26). 그래서 명령(선언)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개정판은 문법대로 바르게 명령법으로 번역했다.
27절에 보면 이 제사장 축도문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선언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이같이 –축복할지니”(שָׂמוּ)는 완료형으로 쓰였다(BHS, Num 6:27). 그런데 이 단어의 원형인 쑴(שׂוּם)은 ‘놓다, 두다, 세우다, 만들다, 명하다, 뻗다’는 뜻이다(TWOT, 2243). 즉 누구에게 구걸하거나 기도하거나 간구하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주는 의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구절은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는 말씀이다. 제사장의 축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는 것, 주는 것, 명하는 것이다. 선언의 의미이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제사장이 신이어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복을 내리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선언하는 의미이다. 제사장이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선언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축도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신다.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는 약속이다. 원문에 “내가”(אֲנִי)는 하나님 자신을 지시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אֲבָרֲכֵם)는 피엘미완료형으로 ‘내가 그들에게 복을 줄 것이다’라는 약속의 의미이다(BHS, Num 6:27). 즉 민수기의 제사장의 축도문은 제사장들이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선언하면 하나님께서 그 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주의할 점은 제사장들에게 축복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대리 선언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자신이 제사장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 복을 백성에게 내려 주시는 것이다.
알버트 반즈(A. Barnes)는 이것을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제사장의 축복 선언으로 이해했다.
“제사장 축복(집회서 36:17 참조)은 제사장들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엄숙하게 제정되었으며, 이 기능을 통해 제사장 직분은 절정에 달한다( 레위기 9:22 주석 참조). 하나님께서는 친히 공식을 마련해 주셨고, 그분의 백성이 순종으로 그분과 참되고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권위 있는 중재자들이 그분의 특별한 축복을 선포하고 전달할 수 있게 하셨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이 축복은 매일 드리는 제사 끝에 주어졌다...축복의 구조는 놀랍다. 그것은 리드미컬하고, 세 부분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며, 점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실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완전한 선물인 평화에 이른다. 민수기 6장 26절. “그분의 얼굴을 너에게 향하게 하신다.” 즉, 그분의 생각과 보살핌을 특별히 너에게 향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열왕기하 9장 32절과 창세기 43장 29절, 44장 21절의 유사한 구절들을 비교해 보라. 이러한 사랑의 섭리를 통해서만 축복의 마지막에 담긴 하나님의 평화가 주어질 수 있다. 민수기 6장 27절. “내 이름을 이스라엘 자손 위에 두라” 즉, 그들을 축복할 때 내 거룩한 이름을 선포하라.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이 선포한 축복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A. Barnes, Notes on the Whole Bible, Numbers 6:22-27)
칼빈(Calvin)은 축도가 축복을 구하는 기도문이 아니라 축복 선언으로 이해했고, 그는 독특하게 이 제사장의 축도문은 신약에 오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성취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교리는 특히 유익한데,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세우셔서 그들의 아버지 같은 은혜를 증거하고 선포하게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해하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축복하다'라는 단어는 종종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의미하는데, 이는 모든 경건한 사람들의 공통된 의무입니다. 그러나 이 예식(조금 뒤에서 살펴보겠지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축복하라는 명령을 전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누가복음은 이 예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율법의 엄숙한 예식에 따라 제자들을 축복하기 위해 "손을 드셨다"(눅 24:50)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통해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백성을 화해시키는 사절로 임명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유일하고 충분한 보증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으므로 백성을 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그들이 축복의 형식을 큰 소리로 말해야 하고, 작게 속삭이듯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백성이 믿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Calvin, Commentary on the Bible, Numbers 6:22)
매튜 헨리(Matthew Henry) 역시 제사장의 축도문은 다른 기도문과는 다르게 제사장이 하나님의 입으로서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고 선포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제사장의 축도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여기서 첫째, 제사장들은 여러 가지 선한 직분을 수행했는데, 그중 하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눅 6:23). 이것은 그들의 직무의 일부였습니다(신 21:5).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제사장들에게 영광을 주셨는데, 이는 덜 나은 자는 더 나은 자로부터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하나님은 제사장을 하나님의 입으로 여겼던 백성들에게 큰 위로와 만족을 주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스스로 축복을 간청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직분상 중보자였고 축복을 명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했기에, 그 축도에는 약속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권위 있는 자로서 두 손을 들고 얼굴을 백성에게 향하여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첫째, 이것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사명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행 3:26).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신앙을 대변하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마지막 일은 두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신 것이었습니다(눅 24:50-51).... II. 여기서는 축복의 형식이 정해져 있습니다. 다른 기도에서는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에 관해 명하신 이 축복이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시려고 그들의 입을 통해 직접 말씀하게 하셨습니다(눅 6:24-26).”(Matthew Henry, Commentary on the Bible, Numbers 6:22)
구약학자인 카일(Keil) 역시 제사장의 축도문을 해석하면서 삼위 하나님의 복을 회중에게 선포하는 방식으로 선언했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삼위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고 선포하는 축도문이라고 보고 있다.
“삼위일체 축복은 하나님께서 여호와로 나타나신 그분의 신성 안에 담긴 모든 축복을 그분의 회중에게 주시겠다는 생각을 가장 무조건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이름은 단지 자신을 계시하신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나타낼 뿐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회중에게 선포하게 하신 이 축복의 본질은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삼위일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Keil & Delitzsch, Old Testament Commentary, Numbers 6:22)
축도문은 선언이다
따라서 고후 13:13절에 동사가 없어도 민 6:22-27절의 제사장 축도문에 근거하여 보면 이것은 기도의 의미가 아니라 선언의 의미가 분명하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고후 13;13절의 형식과 같이 동사가 없는 형태의 축도문들이 여럿 나오는데 그것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롬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갈 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엡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엡 6: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엡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빌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 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골 4: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5: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후 3: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딤후 4: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딛 3:15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몬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몬 1: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히 13: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헬라어 문법에서 문장에 동사가 생략된 것을 보게 되는데 앞에 언급된 축도문이 바로 그런 형태이다. 이런 경우 명사구 자체로 ‘–있을지어다’라는 축복의 기원문(선언, 선포)이 된다. 동사가 생략된 형태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 복을 달라는 기도문의 의미보다는 선언문의 의미가 된다.
장로회 헌법에 나타난 용어와 총회의 결의
1. 헌법 정치편 제7장 교회 예배 의식 장로회 헌법 정치편 제7장 교회 예배 의식에 보면 다음과 같이 예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1. 기도(행 6:4, 딤전 2:1) 2. 찬송(골 3:16, 시 9:11, 엡 5:19) 3. 성경 낭독(행 15:21, 눅 4:16∼17) 4. 성경 해석과 강도(딛 1:9, 행 9:20, 10:42, 눅 24:47, 딤후 4:2) 5. 세례(마 28:19∼20, 막 16:15∼16) 6. 성찬(고전 11:23~28) 7. 금식과 감사(눅 5:35, 빌 4:6, 딤전 2:1, 시 50:14, 95:2) 8. 성경 문답(히 5:12, 딤후 3:14~17) 9. 헌금(행 11:27~30, 고전 16:1~14, 갈 2:10, 6:6) 10. 권징(勸懲)(히 13:17, 살전 5:12∼13, 고전 5:4∼5, 딤전 1:20, 5:20) 11. 축복(고후 13:13, 엡 1:2)
제일 마지막 11번이 축복이다. 이것은 성경을 근거로 이해하면 복을 비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의 선언적 의미이다.
2. 예배모범 헌법 예배모범편에 보면 제8장에 폐회를 다룬다.
“제8장 폐회. 공예배의 모든 예배는 목사의 축도(고후 13:13, 히 13:20~21, 엡 3:20~21, 살후 2:16~17, 민 6:24~26)로 하되 목사가 없는 경우는 주기도(마 6:9~13)로 폐회한다.”
여기에 보면 축도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축도 역시 복을 비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는 의미가 성경과 합치한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예배 의식을 명시하는 헌법 정치편의 용어와 예배모범의 용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정치편에는 축복으로 명시하고, 예배모범에는 축도로 명시하고 있어 혼동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하나로 통일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
3. 총회 결의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제45회 총회(1960년 9월 22일)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본 정치부에서 제안한옵는 바는 목사가 예배 폐회 때 3위의 이름으로 축기도할 때에는 예배모범에 있는대로 「있을찌어다」로 일치하게 실시하기를 각 조회에 시달하여 주심이 가한 줄 아나이다.”
또한 제104회 총회(2019년 9월 23일-26일)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대구중노회장 김동준 씨가 헌의한 각교회에서 축도 시 성경대로 “있을지어다”로 통일하기로 헌의의 건은 제45회 총회 결의대로 처리하기로 가결하다.(있을지어다로 통일)”
제108회 총회(2023년 9월 18일-21일)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가. 주기도문, 사도신경, 축도 관련 전북노회장 최용만 씨가 헌의한 주기도문, 사도신경, 축도를 총회 결의대로 시행하도록 전국교회에 재지시 청원 및 공청회에서 ''축원하옵나이다''로 축도한 총회신학부는 기독신문에 사과문 게시 요청 헌의의 건은 총회 결의대로 시행할 것을 전국 교회로 재지시하기로 하다.”
결론
앞에서 살펴본 대로 축도에 대해서 성경은 단지 기도문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민수기 6:22-27의 제사장의 축도문을 보아도 그러하고, 고전 13:13절의 바울의 축도를 보아도 그러하다. 이것은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다.
축도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제사장들에게 주신 명령이고, 신약의 사도와 교회의 목사에게 주신 명령이다. 그러나 제사장이나 사도, 목사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축도를 하는 사람은 복을 주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을 대리하여 삼위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는 자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붙들고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축도의 의미이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문맥을 따라서 축도의 원리와 의미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축원하옵나이다’보다는 ‘있을지어다’라는 선언적(선포적) 마무리가 합당하다.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 내용에 특정된 개인이나 관련 교회가 반론을 요구할 때 재반론을 조건으로 허락할 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