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신사도 운동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2

김순정 | 기사입력 2026/02/21 [13:09]

[논문] 신사도 운동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2

김순정 | 입력 : 2026/02/21 [13:09]

 

▲     ©리폼드뉴스

 

II. 신사도 운동의 역사

 

1. 신사도 운동의 배경-아주사 부흥 운동(Azusa Rivival)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신사도 운동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그것은 아주사 부흥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신사도 운동은 한국교회가 부르는 명칭이다. 원래는 신사도개혁운동이라 불렸다. 와그너는 그의 책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에서 다음과 같이 명칭을 설명했다.

 

  “이 운동을 가리켜 내가 붙인 이름은 ‘신사도적 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이다. 내가 ‘개혁’(Reformation)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이 운동의 전반적인 영향력이 개신교 종교개혁에 필적하기 때문이다. 또 ‘사도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 변화의 가장 급진적인 부분이 바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사도의 은사와 직임이 다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新)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그 교단의 공식적인 명칭에 사용하고는 있지만 현재의 새로운 교회의 특징이 아닌 전통적인 교회의 모습을 고수하는 많은 교단들과 현재의 이 운동을 구분하기 위해서다.”(C. P. Wagner,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김영우 역 (서울: 쉐키나, 2006), 9-10)

 

신사도 운동의 기원에 대해서 신사도 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신사도 개혁운동의 기원을 추적하면 독립은사주의 교회들, 그 이전의 전통적 오순절 운동, 그리고 그 이전의 아주사 부흥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Wagner, Dominion, 2008, 25)

 

신사도 운동은 정통교회들(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독립은사주의, 오순절 운동, 아주사 부흥 운동의 영향을 받아 태동된 것이다(Wagner, Changing Church, 11). 와그너는 이렇게 1906년 아주사 부흥 운동이 신사도 운동의 모태라고 주장한다. 

 

오순절 신학자인 도널드 데이튼(D. W. Dayton)은 초기 오순절 운동의 세 가지 명칭을 오순절 운동, 사도적 신앙, 늦은 비 운동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세 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첫째는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이다. 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목사였다. 그는 방언과 예언을 체험하고 나서 성령세례의 확고한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각 교단이 그의 사상을 문제 삼자 그는 가톨릭 사도교회라는 것을 세우게 된다. 

 

두 번째는 알렉산더 도위(John Alexander Dowie)라는 사람이다. 그는 신유사역자로 기독교가톨릭교회를 설립하고 시카고 북부에서 시온시라는 공동체를 건설했다. 그리고 자신을 회복자 엘리야라고 불렀다. 또 그는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사도라고 불렀다. 그는 스스로를 구원자 엘리야라고 하면서 구원자 복장을 만들어 입고 활동했다.  

 

세 번째는 감리교 설교자 찰스 팔함(Charles Fox Parham)이다. 그는 사도적 신앙을 전파하고 아주사 부흥운동을 일으킨다(배덕만, 「신사도개혁운동 너는 누구니」, 96). 아주사 부흥 운동은 19세기에 일어난 성결운동이었다. 성공회 신부였던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완전 성화, 성결을 강조하는 운동으로 태동된 감리교회는 점차 신앙이 퇴색되었다. 그러자 성결을 강조하는 이들이 모여 자유주의 신학, 이성적 신학에 반대하면서 성결운동을 시작한다(W. 월커, 「기독교회사」, 731).  

 

이들의 특징은 엄격한 도덕성이었다. 이들은 중생 이후 사랑 안에서 온전해지는 것이 두 번째 축복이라고 주장하던 파비 팔머(P. Palmer)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다. 특히 이들은 신유의 경험에 대한 기대를 가졌고, 성화를 성령세례로 이해했다. 성령세례는 성령세례를 받아 성결하게 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봉사를 위한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2의 축복은 성결체험, 제3의 축복은 능력체험이라고 구분하였다. 이 운동이 오순절교회의 태동에 있어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배본철,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 참고). 

 

이들은 ‘늦은 비’와 ‘이른 비’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아낸다. 신 11:10-21, 약 5:7-8, 욜 2:23에 이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 단어들을 은유적,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여 이른 비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늦은 비는 마지막 시대의 부흥이라 해석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추수를 준비하는 하나님의 은사,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의 상징이라고 해석했다(김재성,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66).

 

윌리엄 브랜험(William Branham)은 늦은 비 운동의 중요 특징을 설명한다(정이철, 「신사도운동에 빠진 교회」, 21). 

 

  첫째, 종교개혁 이후 하나님이 점진적으로 진리를 회복시킨다는 회복주의(Restorationalism)를 주장했다.

  둘째, 복음전도자, 목사, 교사의 세 가지 직분과 함께 사도, 선지자 직분을 교회에 회복하고 계신다는 사상을 주장했다.

  셋째, 사도와 선지자들이 영적인 축복과 은사들을 전달하기 위해 안수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넷째, 일반적 권면이 아니라 한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계시로서의 ‘개인적인 예언’(personal prophecy)이 회복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다섯째, 방언찬양, 박수, 함성, 예언찬양, 새로운 형태의 춤 찬양(성령 춤?)등이 하나님의 임재를 강화한다고 가르쳤다.

  여섯째,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이와 같은 사상으로 무장된 교회들이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 믿음의 일치를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다.

 

1900년대 캔자스에서 성경학교를 운영하던 찰스 팔함(C. Parham) 목사는 이단 교리를 믿던 자였다. 불신자의 영혼이 사후에 소멸된다는 영혼 소멸설을 주장했다. 또 하나님은 에덴 동산 안에 사람들과 밖의 사람들을 따로 창조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성령세례, 방언을 받은 사람들만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휴거한다고 주장했다(정이철,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13). 

 

팔함 목사는 학생들과 성령세례의 증거에 대해 연구하던 중 사도행전을 통해서 성령세례와 관련해 나타나는 현상이 방언이라고 확신하고 방언이 성령세례의 상징이며 마지막 날의 상징이고 늦은 비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보았다. 따라서 그는 수년간 초대교회의 방언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1900년 1월 1일 한 여성도에게 안수기도를 하던 중 그녀가 방언을 하게 되었다(김재성,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68-69).

 

팔함과 그의 주변에 모여든 이들은 성령세례가 초기 오순절 운동의 반복이며 종말적 개념이고 방언은 지상교회에 나타난 종말론적 표적이며 두 번째 오순절 시대의 상징이고 교회가 마지막 시대 부흥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표적이라고 했다. 자신들을 통해서 그 큰 부흥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온 세계에 복음이 증거되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는 종말이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정이철,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16).

 

피터 와그너(P. Wagner)는 이것을 보고 이들과 신사도 운동의 사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이들이 이 운동의 뿌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운동을 하는 이들이 체계적으로 성경을 배우지 못했고 성경과 신학을 연구하는 능력도 부족했으며 경건생활을 훈련받을 기회도 얻지 못했다. 정식적 신학 수업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김재성,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73). 그래서 이들은 체계적 성경연구와 신학 연구가 부재한 상태에서 오직 은사주의로 흘러가고 신비주의로 흘러가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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