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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성경 역본, 킹 제임스 역본의 제일주의 함정과 한국교회 도전한국교회는 킹 제임스역본의 제일주의 주장에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반드시 이 문제는 신학적으로 정리가 필요하다
영어 역본 연혁(1382~1611년) - 중세 후반기의 시대적 배경
(리폼드뉴스) 역사적으로 그동안 킹 제임스역본은 여타 다른 성경 역본과 함께 역본에 한계와 장점들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령의 역사로 이러한 역본에 통해 정통교회의 교리를 연구하여 확립해 왔다.
하지만 킹 제임스역본과 다른 역본에 대한 킹 제임스역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가 교리적, 신학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지 않음을 확인하는 결의(제110회 총회)를 하였다.
킹 제임스역본은 성경 원본에서 직접 번역한 것도 아니며, 원본에서 필사한 유일한 사본을 놓고 번역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원본을 필사한 사본이 있을 것이고 그 사본에서 또 필사한 사본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사본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최선의 번역을 위해 전 시대를 걸쳐 연구하고 노력한 흔적이 교회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과연 킹 제임스역본은 어떤 성격의 번역본이며, 이 땅에 산재한 모든 번역본보다 우월한 유일주의로 완전・절대화 할 수 있는가? 이런 주장이 간과한 것은 무엇인가? 이를 묵인할 때 교회 정체성은 어떻게 훼손되고 파괴되고 있는가?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1. 존 위클리프 역본(1382년)
중세 후반기의 유럽은 교회 권위가 절대적이었으며, 성경 역본은 일반 대중이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 역본만 존재했다. 모든 사람이 성경을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자국어인 영어로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는 개혁적인 주장이 있었다.
그 결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교수로 활동한 존 위클리프(1324-1384)는 1380년대 초반부터 성경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는 인쇄술 발명 전이었으며, 그는 1382년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 전체를 영어로 신구약 성경을 완역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영어로 번역된 성경은 중세 유럽에 커다란 반항을 일으켰다. 위클리프 역본은 14세기 영어 확립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이후 성경 번역에 동기를 부여하고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추진체 역할을 했다.교회 교권은 위클리프의 번역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후 15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되어 새로운 혁신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위클리프 번역 성서는 성서 원문의 의미가 쉽게 전달되지 않았다. 성서의 원문 즉, 히브리어와 그리스어가 아닌 라틴어 성서를 직역하는 데 머물러 있었기에 라틴어 원문을 대조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물론 이후의 개정판에서는 좀 더 명료해지기는 했지만, 성서 원문의 의미를 잘 살리지 못한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2. 윌리엄 틴들 역본(1526년)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을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하기로 결심하고 그는 “하나님이 내 생명을 지켜준다면 몇 년 안에 밭을 가는 농부가 당신보다 성경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Foxe, The Acts and Monuments V, p. 117).
그는 영어 성경 번역에 대한 허가를 받고자 했지만, 가톨릭교회는 이를 거절했다. 틴들은 번역 성경을 출판한 1526년부터 1536년 화형을 당하기 전까지 번역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 중이었으며 금속 활자로 인쇄도 가능했다. 또한 루터의 성경과 다른 독일어 번역본들도 이미 출간되어 있었다.
틴들은 독일에 머물며 히브리어를 배웠고, 이 모든 것들을 활용하여 신약성경 전체와 모세오경을 포함한 구약성경의 4분의 1을 번역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영어 성경책을 소유한 것이 발각되면 성경책은 압수되었고 소유한 사람은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이 영어 성경책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성경책은 대부분 불에 타 파손되었다. 결국 틴들은 체포되었고, 16개월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이단으로 규정되어 화형을 당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주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해 주소서!”라는 기도였다고 한다.
옥수퍼드대학은 이단을 세밀하게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성경을 못 읽게 했다. 당연히 틴들은 이런 통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1526년 틴들 역인 신약성경이 보름스에서 인쇄되어 잉글랜드로 유입된 이후 틴들은 지속해서 성경 번역의 정당성과 가톨릭 체제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책들을 여러 권 저술하였다.
그러나 국왕 헨리 8세는 틴들의 성경 번역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가톨릭교회는 영국의 모국어 성경 출판을 불허했고 속인에게 보급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그런 시대였다.
3. 킹 제임스역본(1611년)
제임스 왕은 현존하는 역본의 단점을 극복하고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성경 번역을 지시했다. 이 영어 역본이 킹 제임스성경(영어: The King James Version, 약칭 KJV)이다. 1604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1611년에 끝마쳤으며 이 역본을 흠정역이라 하는데 모국어인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왕이 승인하여 번역된 역본이란 의미에서 '흠정역'이라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영어 성경은 1382년 존 위클리프의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400년대에 이르기까지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경이 일반인의 언어인 영어로 번역되는 관행에 위협을 느꼈다. 이는 성경이 모국어로 제공된다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읽고 교회의 가르침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영어 번역을 금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사제 중재 없이 평신도가 성경을 이해하고 신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도록 돕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국어인 영어 번역을 위해 영국 전역에서 최고의 언어학자, 신학자 등으로 구성된 54명의 학자들을 6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두 그룹은 옥스퍼드에, 두 그룹은 케임브리지에, 두 그룹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배치했다.학자들에게는 번역 작업 지침은 먼저 감독 성경을 토대로 하되 다른 번역본이 더 낫다고 합의될 때 가장 나은 원문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에 사용될 번역본에는 틴들의 신약성경, 매슈 성경, 커버데일 성경, 대성경, 제네바 성경이 포함되었다. 또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명이나 주석을 빼기로 했다.
한 그룹이 번역 작업을 완료하면 다른 그룹으로 보내어 검수하도록 했다. 그래서 여섯 그룹 모두 다른 그룹이 번역한 것을 확인했다. 그 후 각 그룹에서 두 명씩 선정하여 번역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편집했다.
마지막으로 세 명을 선정하여 최종 편집 과정을 거쳤다. 이런 방식으로 7년 동안의 작업을 마치고 완성된 ‘킹 제임스(King James Version, KJV) 성경’이 1611년에 출간되었다. 킹 제임스역본은 이처럼 철저한 편집 과정을 거쳤음에도 초판 인쇄본에서 여러 가지 실수가 발견되었다. 유명한 실수 중 하나가 출애굽기 20장 14절에 부정의 뜻을 가진 단어 ‘not’이 빠져서 “간음하지 말지니라”가 “간음할지니라”가 되어 버렸다.
이런 작은 실수들 때문에 킹 제임스역본은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은 1769년에 옥스포드 대학의 블레이니 박사에 의해 75,000사항이 대폭 교정되었고, 그중 400여 개 이상은 표현과 의미가 바뀌었으며, 여러 번 개정하여 인쇄되었다.
한국교회는 킹 제임스역본의 제일주의 주장에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반드시 이 문제는 신학적으로 정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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