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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신약해석의 역사에 대한 고찰(3)

김순정

김순정 | 기사입력 2022/11/19 [19:29]

[논문] 신약해석의 역사에 대한 고찰(3)

김순정

김순정 | 입력 : 2022/11/19 [19:29]

 

▲     ©리폼드뉴스

 

II. 종교개혁 시대

 

1.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는 헬라어 신약성경의 판들과 새로운 라틴어 번역본, 그의 수많은 라틴어 번역 문구들을 설명해주는 필기노트들만 아니라 그가 출판한 로렌초 발라의 라틴어 신약성경에 대한 언어학적 예증들과 그가 신약 서간들과 복음서들을 풀어 놓은 것들에서도 신약에 대한 이해가 나타난다. 그의 이 기록들은 유럽의 언어들로 번역되어 일반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영어 번역은 에드워드 6세 시대에 왕가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의 해석은 역사적이고 문맥에 따라 확립된 의미를 1차적으로 다루고 독자로 하여금 본문에서 모종의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게 하는 해석을 실천에 옮겼다.

 

2. 루터

 

16세기 루터보다 성경 해석사에 더 크고 중대한 영향을 준 사람은 없다. 그의 해석의 원리는 교황이나 교회, 회의의 권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성경만으로의 권위에 호소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믿는 신자는 성경을 넘어서는 어떤 권위도 인정하도록 강요될 수는 없다. 성경만이 오직 신적 빛으로 덧입고 있을 뿐이다.”(M. Luther, Works, Weimarer Ausgabe ii. 299)

 

그는 스스로 자기 양심은 성경에 붙잡혀 있다고 강조하였다. 신자는 교회가 요구하는 것을 따라야 하고 이해하고 그것이 타당한 요구인지 아닌지 그것에 복종하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 또 그의 이해와 결심의 근거는 오직 성경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성경이 이처럼 권위있고 명료하다면 해석의 원리들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 원리는 문자적 해석이다. 그리고 원어로 읽혀져야 하고 이들 원어에 대한 수고스러운 연구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신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핵심을 주장했다.

 

신약은 한 책이다. 그 안에 복음과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신약에 오직 한 복음, 한 책, 한 신앙, 그리고 오직 한 약속의 하나님만이 존재한다고 확신해야 한다.”(W.A., Deutsche Bibel vi. 2.)

 

3. 칼빈

 

칼빈은 아주 학자적이고 논리적이며 꼼꼼한 사람이었다. 성경을 거의 다 주석했다. 요한2, 3,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 신약의 거의 대부분 주석을 했다. 루터와 같이 그도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해서 읽고 상세하게 풀이를 했다. 그리고 루터와 같이 알레고리적 해석을 거부했다.

 

그는 성경 주석 외에도 기독교강요를 출간한다. 이 기독교강요는 개혁신학의 요약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성경 교훈에 근거하여 기록하였다. 그의 명제들과 주장들은 성경에서 근거하였다. 그래서 그의 기독교강요를 읽으면 수없이 많은 성경구절들이 인용됨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석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사상에 반대하던 야코부스 알미니우스에게조차 높이 평가된다.

 

내가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성경을 읽은 후에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칼빈의 주석들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왜냐하면 나는 성경해석에 있어 칼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고 그의 주석들은 교부 저술들 속에서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어떤 것보다도 더 큰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C. Bangs, Arminius: A study in the Dutch Reformation, 287-288)

 

III. 종교개혁 이후

 

1. 로마 가톨릭

 

요한네스 헨테니우스는 1547년에 아레타의 계시록 주석의 라틴어 역본에 서문을 썼고 그의 동료 신자인 알폰소 살메론도 그의 책에서 비슷한 서문을 썼다. 이들은 계시록의 상징주의를 이해하는게 진보를 이룩했다. 그리고 예수회 학자들 프란시스코 드 리베라와 루이스 드 알카자가 계시록 주석을 쓰는데 공헌했다. 그들은 요한 자신의 시대의 초와 3년 반 후의 재림 바로 직전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F.F. Bruce, “History of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29-30).

 

2. 그로티우스

 

네덜란드의 그로티우스는 교황과 적그리스도를 동일시 하는 종교개혁 전통과 결별했다. 그의 저서는 플라시우스 일루리쿠스와 카메라리우스의 언어학적이고 역사적 방법을 엄격하게 사용하였다. 그의 본문을 다루는 태도는 객관적이어서 합리주의자로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문맥들을 확인하려는 시도들은 언제나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3. 라이트푸트

 

영국의 존 라이트푸트는 신약해석에서 유대교 연구의 중요성을 실현했다. 그의 저서에서 그는 랍비 저술에서부터 복음서들,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를 예증해주는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했다.

 

4. 존 밀과 뱅겔

 

존 밀은 죽기 두 주 전에 스테파누스의 헬라어 본문 3판을 30만개 정도의 변이 본문들을 담은 부록을 수록했다. 이것은 요한 알브레히트 뱅겔의 신앙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상황을 철저하게 검토하는데 전력했고 본문에 대한 증거들을 구분짓고 그것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길을 비춰주었다. 그래서 어려운 본문이 쉬운 분문에 대해 선호되어야 한다고 했다. 1742년에 나온 그의 책 Gnomon Novi Testamenti는 교리적 전승과 상관없이 문맥과 문법에 기초한 정확한 주석학적 요점들을 포함했다.

 

IV. 19세기 역사

 

1. 칼 라흐만

 

라흐만은 고전어와 독일어 어의학 연구에 대해서만 아니라 신약 연구에 대해서 놀라운 기치를 가진 공헌들을 이룩했다. 비평적 헬라어 본문은 4세기 본문을 회복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고 당시 손에 넣을 수 있는 최초의 사본들과 역본들의 증거를 철저하게 연구했다. 그는 마가의 우월성과 마태와 누가복음이 마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이론을 일반에서 받아들이도록 역할을 했다.

 

2. 슐라이어마허

 

그는 해석학적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접근했다. 그는 근본적 합리주의에 서서 성경을 이해하고 기독교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복음서 설화를 심리적으로 평가하는 일과 관련해 예수님의 부활을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절한 것이라고 해석했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초자연적 특징들도 제자들이 가진 전제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병사가 찌른 창은 외견상 그렇게 보일 뿐 정맥을 찔러서 나쁜 피를 빼낸 것으로 도리어 유익한 일이었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데이빗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삶에 간섭하시는 초월적 하나님을 믿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서의 증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복음서는 조심스럽게 재구성한 것으로 기적과 신화를 동일시했다. 그래서 신화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F.F. Bruce, “History of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38).

 

3. 마이어 주석

 

19세기 위대한 주석 가운데 하나가 마이어 주석이다. 하인리히 마이어가 주석한 것으로 처음에 두권은 본문과 번역을 포함한 것으로 출판되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의 주요 서신들은 마이어가 주석했고 나머지는 다른 네 명의 학자들이 주석했다. 이 시리즈에는 불트만, 헨쉔, 콘첼만, 로제 등이 기고자로 참여했다. 마이어는 문법적 역사적 방법을 택하고 신학적이고 해석학적 문제들은 순전한 주석가의 영역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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